#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향한 수출 통제 품목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계·로봇 산업도 사정권에 포함됐다. 일본은 전략물자 통제 품목을 명시한 수출무역관리령에서 전적으로 일본산에 의지하는 수치제어기계(CNC)를 명시했다. 로봇 산업에서는 가뜩이나 수급이 불안정했었던 '감속기'가 급소로 거론된다. 일본이 우리나라 산업 급소를 하나씩 건드리면서 제조 현장에 전 방위 타격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작기계 산업 급소 'CNC'…日 전략물자 통제 품목 포함
최근 전략물자관리원이 일본 경제산업성 수출 통제목록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수출무역관리령 6항과 16항에 각각 CNC를 명시했다.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수출무역관리령 16항은 '캐치올 규제(Catch-All Controls)'를 적용한다. 캐치올 규제를 적용하면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수출 당국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할 때 해당 물자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 지정된 목록 이외에도 포괄적으로 품목을 제한하는 점이 특징이다.
기계업계에서는 특히 CNC가 캐치올 규제에 포함되면 국내 공작기계 산업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작기계 업계 한 관계자는 “캐치올 규제에 포함되면 (일부 성능에 상관없이) CNC 전체를 제한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 공작기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20%를 차지하는데 이게 다 막힌다”고 말했다.
공작기계는 일본 정부가 수출 통제 대상에 추가할 수 있다고 알려진 분야다. 일본 NHK는 지난 8일 일본 정부가 추가 수출 규제 대상으로 공작기계와 탄소 섬유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은 이중 CNC를 정밀 타격할 기반을 갖춘 셈이다.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공작기계를 자동화하는 데 핵심 부품인 CNC에 대한 일본 수입 의존도가 특히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 우리나라 수입 통계에서도 CNC 일본 의존도를 간접 확인할 수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CNC와 연관된 자동제어반·수치 제어반 품목은 7100만달러를 수입했다. 이중 일본에서 수입한 비율은 6800만달러로 95.7%에 달한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우대국)'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사실상 CNC 수출을 금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작기계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CNC는 (일본 정부에서) 포괄규제를 받으면 3년간 심사가 없다시피 했다”면서 “심사 기간이 90일로 늘어나면 수출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규제가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기계 산업 전반이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성철 단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CNC 시스템은 공작기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공작기계 원가에서 많게는 30%까지 차지한다”면서 “우리나라가 자동화된 공작기계에 CNC를 붙여서 판매하기 때문에 일본이 수출을 제한하면 우리나라 기계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출 주력 품목으로 성장한 '일반기계', 日 의존도는 높아
우리나라 일반기계 산업은 최근 주력 수출 품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일반기계 수출액은 535억58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 13대 주력 품목 중 반도체, 선박, 석유제품에 이어 수출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상반기 수출도 264억1300만달러(잠정치)를 기록, 지난해 상반기 262억6400만달러와 비교해 소폭 증가했다. 올해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무역수지도 반도체(239억800만달러), 자동차(164억5700만달러), 석유화학(150억2100만달러)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일반기계 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일본 수입의존도는 과제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일반기계 분야 수입액 120억3600만달러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억8000만달러(22.3%)다. 수입하는 일반기계 5대 중 1대 이상은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세부 품목별로 따져보면 공작기계와 기계 부품이 특히 일본 수입 비율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관세청 1~5월 일반기계 세부 수입 품목(MTI 기준) 자료에 따르면 일본 수입 비율은 농기계가 47.2%로 가장 높았고, 이어 금속공작기계(38.4%), 제지인쇄기계(32.2%), 기타기계류부품(31.3%) 순으로 나타났다. 공작기계는 일본 수입 물량에서도 2억3100만달러로 원동기 및 펌프(4억6800만달러), 기계요소(4억1300만달러), 광학기기(3억4200만달러)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컸다.
일본은 모터 등 기계부품과 광학기기 등 정밀기계에서 특히 기술경쟁력을 갖췄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일본 기계 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성장해왔다. 일본이 기계부품까지 수출을 제한하면 우리나라 기계 산업이 어디서든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전문가 “獨·韓 제품으로 대체 가능…日 업체 타격 받을 것”
정부와 전문가는 일본이 수출을 제한할 때를 대비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 제품으로 기존 기계 부품을 대체하는 방안을 고민한다. CNC는 독일 지멘스와 하이덴하인에서도 다량 제품을 생산한다. 성능도 일본 제품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가격이 일본 제품보다 비싸기 때문에 비용 상승 부담은 고스란히 업체가 떠안아야 한다. 또 일본 CNC에 익숙한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독일 제품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정부는 일본이 CNC 수출을 제한하더라도 제한적으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우리나라를 주요 시장으로 삼는 일본 기계업체도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독일 제품 사용자인터페이스(UI)에만 적응하면 CNC 부품 대체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오히려 우리나라로 상당 물량을 공급하는 일본 화낙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이 국산 제품 활용 비율을 늘려 국내 기계 산업 생태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성철 교수는 “CNC는 세계적으로 독일 제품도 많이 쓰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일본 제품을 많이 사용해왔다”면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CNC 국산 기술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