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가 극자외선(EUV)용 블랭크 마스크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EUV 블랭크마스크는 차세대 반도체 공정으로 부상한 EUV 노광 공정이 기존 공정과 달라지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사업 분야다. 글로벌 장비 1위 업체도 새로운 먹거리 소재를 찾아서 도전하는 반면에 국내에서는 관련 소재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을 20% 이상 점유한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EUV용 블랭크 마스크를 개발하고 있다.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쓰이는 마스크에 회로 모양을 새기기 전 평평한 상태의 마스크를 말한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 회로를 마스크에 미리 새긴 뒤, 빛을 반사시키거나 통과시켜서 웨이퍼에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마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같은데, 빛이 회로를 머금기 위해서 마스크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런 회로가 없는 블랭크 마스크를 먼저 만들면 '마스크 샵'이라는 곳에서 회로를 새겨넣어 공정에서 쓰일 수 있는 마스크가 완성된다.
차세대 반도체 공정인 EUV 공정에서는 블랭크 마스크 구조도 달라진다. EUV는 기체, 액체, 고체 등 모든 물질 상태에서 흡수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특수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 ArF 광원을 이용한 노광 과정에서 쓰이는 마스크는 빛이 통과하도록 만들어졌지만, EUV용 마스크는 몰리브덴(Mo), 실리콘(Si)을 80겹가량 겹겹이 쌓아 EUV를 반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분야로 분류된다.
업계에서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처럼 장비로 잘 알려진 업체가 새로운 사업군으로 EUV 블랭크 마스크를 점찍었다는 게 의외라는 반응이다. 기술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을 시작한지 3년 정도 됐고, 싱가포르에서 제품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존 회사 장비로도 개발이 용이하다고 판단해 새로운 사업군으로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또 회사는 기술 구현을 앞당기기 위해 국내 마스크 장비 업체와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상용화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전문가는 “통상 제품 상용화가 10~20년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연구개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상용화에 성공해도 거래처 확보가 쉽지 않다는 과제도 있다. 이미 블랭크 마스크 시장은 일본 호야, 아사히글라스 등이 삼성, 인텔 등에 독점하다시피 공급하고 있고, EUV 생태계에서도 호야가 관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발전해도 기존 일본 업체의 벽을 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본격적인 EUV 시대가 개화하면 호야, 아사히글라스 외에 더 많은 EUV 블랭크 마스크가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승산이 있을 것”고 전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측은 “연구에 착수한 건 맞지만 구체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계 1위 장비업체도 EUV 시대를 대비하는 분위기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소재 국산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EUV 검사장비, 펠리클, 마스크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일본 업체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일본이 3대 수출 품목에 이어 EUV 블랭크 마스크에도 수출 제동을 걸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지금부터라도 국내 업체 기술이 부족해도 소자 기업이 적극 협력하면서 국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