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 6.1%(5위), 수출 8.3%(4위)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이다. 우리나라는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세계 4위(926만톤) 위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의 55%를 수출한다. 하지만 정밀화학 분야로 갈수록 일본 등 선진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문제다. 현재 주력 산업인 전자,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경쟁력을 높이려면 고순도 정밀화학제품이 필요하다. 또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3D 프린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요 응용기기를 위해 경량 다기능 화학소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화학산업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고부가 정밀화학을 중심으로 한 고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자료에 따르면 대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위 10개 품목에는 정밀화학원료(수입산 중 일본산 비중 15%), 필름·시트 등 플라스틱 제품(43%), 화학공업제품(31%), 자일렌(95%) 등 기초화학 소재가 대거 포함돼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확대될 경우 일본산 수입 비중이 높고 국산화율이 낮은 첨단 화학 소재 분야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석유화학 분야 일본 수출 규제 영향은 '제한적'
일본 수출 규제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외 분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화학 업계에서도 관련 대응에 나섰다. 각 화학사들은 각 계열사별로 일본산 소재 사용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석유화학협회 등과 함께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선정하고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석유화학 원료 중에서는 자일렌의 대일의존도가 95%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수입 규모는 10억8500만달러에 달한다. 자일렌은 방향족 탄화수소의 일종으로 석유화학 제품인 파라자일렌(PX) 생산 원료가 된다.
다만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대체로 일본 수출 규제 확대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주요 석유화학 수출국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다 원재료 역시 일본 외에 공급거래선도 다양해 수급을 다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관계자는 “공정 과정에서 일부 일본산 소재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물성이 제품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라서기보다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급처를 택한 경우로 외산 대체재가 있다”면서 “일부 첨가제 등 고부가 특화제품의 경우 일본산 품질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독일산 등 대체재가 있어 생산에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 특성상 경제성이나 환경적 측면 등 이유로 원료를 내재화하는 것보다 외산을 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많아 100% 국산화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분야와 달리 석유화학 업계에서 외산 의존도가 높은 소재 중에는 기술적인 이유로 국내 생산이 불가능하다기보다는 경제성이나 환경적 이유로 수입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아 이를 꼭 국산화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자급자족하지 않듯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일정 부분 원료를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전 세계 업체가 분업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수출입 규제가 시행될 경우 어느 일방이 피해를 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촉매·첨가제 등 정밀화학 경쟁력 높여야
정밀화학 분야로 갈수록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범용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고부가·고기능성 소재를 생산하는 첨단 정밀화학 분야에서는 선진국 대비 경쟁력이 낮아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본 수입 품목 중에서는 정밀화학원료가 세 번째를 차지했다.
정밀화학은 기초 화학원료를 합성해 추출한 중간제와 원제를 다단계 공정을 거쳐 배합·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가공형 화학산업이다. 기술집약적이며 소량 다품종 생산체제로 부가가치가 높은 특징을 지닌다. 의약품, 농약, 염·안료, 도료, 향료, 화장품, 촉매, 접착제, 계면활성제, 첨가제 등이 이에 속한다. 포토레지스트, 컬러필터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전자산업용 재료 대부분이 정밀화학 제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밀화학제품이 수출 규제에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이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가 대표적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중에서는 분리막과 인조흑연 음극재, 전해액 첨가제 등이 일본 비중이 높다. 분리막 분야에서는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가 글로벌 시장 1, 3위 업체로 LG화학과 삼성SDI 내 점유율이 높다. 전해액의 경우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첨가제 분야에서 일본산 성능이 좋아 일본산 전해액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음극재의 경우 천연흑연 음극재는 중국산으로 다변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성능이 좋은 인조흑연 음극재는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관계자는 “알루미늄 파우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한국과 글로벌 배터리 업체 대부분이 일본에서 구매하고 있어 수출규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핵심 소재의 경우 장기적으로 업체가 다원화될 것으로 보이나 직접적인 수출규제 대상이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귀금속 촉매도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귀금속 촉매 분야에서도 국산화가 많이 진행됐지만 국내 주요 업체가 희성촉매 정도로 아직은 미국, 유럽,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산 공급이 끊길 경우 미국이나 유럽산 대체재가 있지만 납기나 물량 때문에 일시적인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관계자는 “범용 석유화학 중심에서 첨단화학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차별화된 핵심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국내 화학 업계 과제”라면서 “다만 정밀화학 제품 국산화 이슈에 있어서도 기술력보다는 경제성이 우선 고려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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