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상생형 지역일자리로 '함께 멀리 가자'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상생형 지역 일자리'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지난 1월 5년 동안의 진통 끝에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자리 정책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았다. 필자 또한 우려 반 기대 반으로 관련 기사를 챙겨 읽었다. 그러나 2월 중앙정부의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확산 방안이 발표된 후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높아졌다. 곧이어 2호 모델인 경북 구미에 이어 경남 밀양에서 세 번째 모델이 발표되자 상생형 지역 일자리가 대체 무엇인지,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건지 궁금해 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필자 개인으로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이 반갑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은 그 모태가 된 독일 '아우토 5000 모델'이 그러했듯이 지역 산업과 일자리 문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단편 사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 위기를 지역에서 극복하려는 지역 경제 주체 자구책의 일환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 수요 감소, 주력 산업 경쟁력 약화 같은 악재는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고용 창출력 약화를 가져왔다. 특히 전통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지역 도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 전통 산업의 약화는 지역 인재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 우려감도 확산되고 있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은 지역 여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은 노사 간 양보와 타협을 비롯한 지역 내 경제 주체 간 합의를 통해 진행된다. 노·사·민·정 상생 협약을 체결해서 적정 근로 조건, 안정된 노사관계, 향상된 생산성, 원·하청 간 불합리 개선, 복지 협력 등 지역 산업 전반에 걸쳐 이뤄진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하면서 새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도입은 참여 주체 모두의 합의가 필요한 만큼 그 추진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전임 광주시장 공약으로 처음 소개된 후 5년 만에 수차례 닥친 좌초 위기를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광주형 일자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지역 경제 주체들의 양보와 더불어 향후 지역 미래 비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상생형 지역 일자리는 우리 지역과 나라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이자 희망이다. 무엇보다 노·사 간 양보 및 타협, 지자체와 시민사회 참여를 통해 지역에 적합한 일자리를 스스로 찾고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된 밀양형 일자리는 지역 특성에 맞게 대기업이 아닌 뿌리산업 분야 중소기업이 모여 스마트공장을 통해 제조업 혁신을 이루는 모델이다. 25일 정식 체결되는 구미형 일자리는 광주형 일자리처럼 대기업 대규모 투자와 1000명 이상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의 확산 성공을 위해서는 노·사·민·정과 협업을 통한 지자체의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발굴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도 지자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자체 맞춤형 일자리 모델 컨설팅을 제공하고, 투자 애로 해소 및 기업 유치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모두 잘사는 혁신형 포용 국가로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역에서 지역 여건에 맞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을 스스로 찾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동참하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