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한 평(약 3.3㎡) 남짓한 대학 기숙사 또는 가정집 차고에서 무일푼 청년들이 모여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스토리다.
굵직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첫 시작이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예를 들어 보자. 전자상거래 시장 최강자로 자리 잡은 미국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시애틀 집에 딸려 있는 허름한 차고를 첫 사무실로 삼았다. 세계 최고 부호로 꼽히는 그도 사업 초기에는 낡은 문짝을 뜯어 만든 책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혁신 대명사 스티브 잡스도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부모 집 차고에서 첫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팝소켓의 창업자 데이비드 바넷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1년 미국 볼더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스마트폰 사용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집 차고에서 휴대폰 뒤에 붙여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그립을 고안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마트폰 그립 팝소켓은 창업 4년 만에 세계 68개국에서 월 600만개 이상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섰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2018년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기업' 2위에 올랐고, 설립자 바넷은 소비자 제품·소매 부문 '2018년 올해의 기업가상'을 받았다.
이처럼 혁신의 시작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생활 속의 사소한 불편함을 해결해 보겠다는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우선 부딪쳐 보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무모함이 큰 변화를 일궈 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아이디어, 경제력, 네트워크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추기 전까지 시작을 꺼린다. 그러나 기술은 매일 진보하며, 신제품은 연일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감탄할 만한 위대한 아이디어나 그를 뒷받침해 줄 막대한 자본을 꿈꾸며 시작을 미루지만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려움이란 또 다른 아이디어의 원천이기도 하다.
물론 혁신 문제를 예비 창업자의 헝그리 정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 모두 적절한 인프라 설계에 힘쓰고 실속 있는 제도 보완과 자금 지원을 통해 창업자가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현해야 한다. 실제로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1180억원의 창업지원 정책을 펼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7796억원보다 무려 43.4% 증가한 규모다. 사업 추진 부처는 지난해 7개에서 14개로 두 배 늘었고, 사업 수는 60개에서 69개로 증가했다.
국내 기업도 헝그리 정신에 주목하고 있다. 1월 국내 유수의 대기업 SK하이닉스는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하이개라지' 출범식을 가졌다. 사내 아이디어에 창업 기회를 부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말 그대로 차고에서 창업한 글로벌 IT 기업에서 영감을 얻겠다는 포부를 그대로 담아냈다.
도전이 장밋빛 성공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에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휴대폰 그립에 결코 가볍지 않은 성과를 담아 낸 팝소켓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조건 없는 도전 정신으로 위대한 혁신을 일궈 낼 브랜드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이남수 팝소켓코리아 대표 alee@popsocke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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