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소재·부품 기업들이 외산 의존도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다시 국산화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수개월 또는 1년 이내 국산화가 가능하지는 않지만 3~5년 이상 중장기 목표로 수요 기업과 함께 국산화를 다시 시도, 눈길을 끌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가운데 외산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부문에서 여러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과거 이들이 개발했거나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에 쏠린 관심도 커졌다.
디에스테크노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반도체용 고순도 쿼츠 잉곳을 지난 2015년에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이후 실제 양산에 적용하지는 않았다. 최근 이 회사는 국내 반도체 기업과 약 3년 동안 추가로 쿼츠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쿼츠는 웨이퍼 확산·식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순물로부터 웨이퍼를 보호하고, 이송 시 충격 또는 불순물로부터 보호하는 소모성 부품이다. 일본 신에쓰, 미국 모멘티브, 독일 큐실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를 수입해서 임가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원정밀은 일본에 전량 의존하고 있는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섀도마스크를 개발했다. 주로 R&D 용도로 국내 패널 제조사에 소량 납품하고 있다. 아직 양산 라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정부 국책 과제로 새로운 기능의 섀도마스크를 개발하고 있다. 마스크 표면을 나노 처리해 외부 오염물질이 달라붙는 현상을 최소화, 마스크 세정 시간과 마스크 손상을 줄이는 기술이다. 소모성 핵심 부품인 섀도마스크 교체 빈도를 줄일 수 있고, 친환경 세정 용액을 사용해 세정 빈도를 감소시킨다. 계열사인 풍원화학이 친환경 세정 용액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LT소재(옛 희성소재)는 OLED 유기소재 가운데 기술 난도가 가장 높은 청색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대형 OLED용 형광 청색 소재뿐만 아니라 아직 양산되지 않은 전면발광(톱 에미션) 구조용 청색 소재도 개발하고 있다.
나아가 인광 청색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로 거론되는 열활성화지연형광(TADF)도 연구하고 있다. TADF는 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활발히 개발하고 있는 신소재다.
레이저리프트오프(LLO), 레이저어닐링(ELA) 장비 핵심 부품인 라인빔 광학계를 국산 기술로 설계하려는 시도도 있다. 프로옵틱스는 국책 과제로 국내 장비 기업 AP시스템과 함께 국산 라인빔 광학계 개발을 시작했다.
라인빔 광학계는 기판에 폴리머를 씌운 뒤 레이저를 기판에 쏠 때 레이저 빔을 균일하고 정밀하게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레이저·광학 기술이 발달한 미국과 독일이 이 분야 강자다. 가격대가 워낙 높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장비 핵심 부품이어서 기술 내재화가 필요한 분야다.
한 기업 관계자는 “힘들게 기술을 개발했지만 그동안 전방기업과의 품질 확보를 위한 협업이 부족했고, 해외 경쟁사가 전략적으로 가격을 낮춰 진입을 막는 바람에 양산에 적용되지 못했다”면서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을 계기로 다시 상용화 기회가 생긴 만큼 수 년 안에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 시도가 활발해졌지만 양산까지 이어지려면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확보해도 실제 생산 단계에서 수요 기업이 원하는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최소 2~3년, 최대 10년 이상의 R&D 기간을 견뎌낼 중소기업의 '체력'도 필수다. 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 여력도 갖춰야 한다. 경쟁사인 선발 주자의 견제를 이겨 낼 수 있는 가격 경쟁력도 필요하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관계자는 “소재·부품 산업은 정부가 10년 수준의 장기 안목으로 지원 사업을 꾸려야 의미 있는 결과물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서 “단기 성과 위주에서 벗어나 실패를 자양분으로 인정하고 긴 안목으로 기업과 인력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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