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더라도 1년에 두세 번씩은 감기나 설사병으로 고생한다. 하루 휴가를 낼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운 동네 의원이라도 들러 약을 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원에 들러야지 하면서도 진료 시간이 안 맞거나 내일로 미루다가 병을 키우곤 했다. 회사에서 병원을 안 보내 줄 정도로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과 은행은 제때 가기 어렵다.
최근 원격의료 논란이 재점화됐다. 정부가 강원 일부를 규제자유특구로 지정,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 추진을 발표한 뒤다. 20년 가까이 규제로 묶여 있던 원격의료가 의료취약지가 아닌 일반 도시에서 첫발을 디뎠다.
물론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의료 영리화' '동네 의원 고사' '의료 서비스 질 저하' 등을 이유로 이번 사업으로 원격의료 빗장을 풀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원격의료 사업은 도서산간, 군부대, 선박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한정했다. 국민 보건을 위해 당연한 일이다.
원격의료 수요자이자 수혜자는 물리적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 외에도 심리적 접근성이 떨어진 '바쁜 현대인'도 포함된다. 큰 병이 아니더라도 진단·처방이 필요하거나 기존 복용 약을 추가로 타야 하지만 병원 갈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 말이다. 결재, 보고 등으로 사무실을 비우기 어려운 기업 임원도 있을 것이고, 업무 특성상 점심이나 저녁 일정이 많은 영업부서 직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만성질환에 한정한 데다 대형병원이 아닌 동네의원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동네의원을 만성질환 관리 채널로 활용하되 보다 가까운 곳에서 국민 보건을 위한 컨설턴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히려 접근성이 너무 좋아 '의료 쇼핑'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이제 심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바쁜 현대인에게도 다리를 놓아줄 필요가 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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