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8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가능성이 현지 외신을 통해 알려진 지난달 30일부터 29일 오전까지 네이버에서 '불화수소'를 검색하면 나오는 뉴스 건수다. 올해 1월 1일부터 6월 28일까지 불화수소 키워드로 검색되는 뉴스는 296건에 불과했다. 최근 한 달간 불화수소를 언급한 뉴스가 직전 6개월간 나온 뉴스의 20배에 달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것을 숫자로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실제 최근 한 달간 우리 산업계는 이전에 겪어본 적이 없는 대혼란을 겪었다. 초반에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우리 반도체 생산라인이 당장 가동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괴담도 흘러나왔다. 더 무서운 것은 일본이 우리 산업계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단기간에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일본이 1112개에 달하는 자국 전략품목 전체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전자산업 전반은 물론 자동차, 기계, 정밀화학, 첨단소재 등 전 산업분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일본 정부가 이 방침을 단기간에 바꿀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빠르면 내달 2일 각의를 통해 우리나라를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분위기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찬성하는 쪽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추가 조치가 현실화되면 당장 내달 하순부터 거의 모든 산업계가 일본 경제보복 영향권에 들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산업계는 비상계획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직접 일본을 찾아 현장 분위기를 체크한 결과다. 이번 조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정치권도 일본 조치에 마치 벌집을 쑤신 것처럼 혼비백산했다. 산업별 현황 파악과 WTO 제소 추진,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전까지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이제 잠시 숨을 돌리고 침착해져야 할 시간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의도가 무엇인지 냉철하고 파악하고 한시라도 빨리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필요하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전쟁의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경제를 볼모로 한 정치적인 대결은 한일 양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이다.
업계도 침착하게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수십년에 걸쳐 탄탄하게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힘들더라도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핵심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기 상황이지만, 우리가 먼저 허둥대면 질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낙관에만 기댈 수도 없다. 의지할 것은 우리의 실력밖에 없다. 선공을 한다고 무조건 이기라는 법도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 침착하게 버티고 대응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양종석 미래산업부 데스크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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