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8월 1~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간에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악화된 한·일 갈등을 풀기 위해 미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30일(현지시간) ARF가 열리는 태국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일 양국 간 갈등을 중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고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을 만날 것”이라며 “그런 뒤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해 심각한 외교적 분쟁 중지협정 서명 검토를 한국과 일본에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관여하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외교부도 31일 “강 장관이 고노 외상과 1일 오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일본이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한국 배제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할지 주목된다.
한국과 일본 외교장관이 1일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보복조치 이행 후 첫 만남이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직전 최종담판이 이뤄질지가 핵심이다.
외교부는 “강경화 장관은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 계기로 내일(1일) 오전 고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강 장관은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방콕에 도착했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대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한 7월 4일 이후 한일 외교장관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회담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대상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각의에서 처리할 것으로 알려진 8월 2일 직전에 열린다.
강 장관은 방콕 도착 후 기자들과 만나 “양국 관계에 파국 상태가 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이어 “어렵고 또 상황이 이렇게 긴박하지만, 일본과 외교 당국 간에는 수시로 협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면서 “그런 공감대 위에서 우리의 입장을 강하게 개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고노 외무상은 관련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상황을 시정해야 한다는 그간의 주장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
고노 외무상이 장관회담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일본 방침의 변화를 시사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작업은 일본 총리관저와 경제산업성 주도로 이뤄졌다. 외무성의 관여도는 제한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도 일단 미국의 '휴전 요청' 사실을 부인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며 “(일본 정부는)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계속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단 우리 정부도 일본을 향해 단호한 대응 기조를 이어갔다. 청와대는 31일 일본이 반도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모든 조치를 포함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 회의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내놨다.
안영국 정치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