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이 항암바이러스 '펙사벡' 글로벌 임상3상을 전면 중단하게 됐다. 미국 기관으로부터 개발 단계에서 치료제 효과가 없다는 권고에 따른 것이다. 4년 간 이어오던 연구개발(R&D)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라젠은 1일(현지시간) 미국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로부터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3상 시험 무용성 평가 결과,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 받았다고 2일 밝혔다.
신라젠은 “당사는 8월 1일 오전 9시 DMC와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 무용성 평가 관련 미팅을 진행했으며, 진행결과 DMC는 당사에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면서 “당사는 DMC로부터 권고 받은 사항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용성 진행 평가는 개발 중인 약이 치료제로 가치가 있는지 따져 임상시험 지속 여부를 판단한다. 임상 3상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상업화 단계 진입 여부를 결정한다.
신라젠은 2015년 10월 미국 FDA로부터 세계 20여 개국 600명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 허가를 받았다. 진행성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펙사벡 종양 내 투여 후 기존 간암 치료제 '넥사바'를 투여한 환자 300명과 단독 투여한 환자 300명의 전체 생존율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임상3상 '중간평가'에 해당하는 DMC 무용성 진행 평가를 통과할 경우 2020년 12월 임상 3상 완료를 목표로 했다.
이번 DMC 권고는 사실상 펙사벡의 임상적 효과가 떨어져 치료제 개발 의미가 적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 상황에서 임상3상 진행은 의미가 없어 원점에서 새롭게 시험을 하거나 개발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펙사벡은 간암 등 고형암을 치료하는 면역치료제다. 유전자 재조합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이용한다. 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해 사멸시킨다. 세계 최초 면역항암제인 '임리직' 이후 가장 앞선 임상단계에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임상 실패는 처음이 아니다. 펙사벡은 미국 제네릭스가 원 개발사다. 제네릭스는 펙사벡 임상 2a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지만, 2013년 2b상은 실패했다. 2014년 신라젠이 제네릭스를 인수하면서 이듬해 임상 3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용성 평가 벽을 넘지 못해 두 번째 실패를 안게 됐다.
이번 무용성 평가는 꾸준히 제기되는 '거품론'과 각종 악재를 뛰어넘어 신라젠 독자 기술력을 입증할 기회로 주목 받았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신라젠 임상 중단설이 꾸준히 나온데다 최근 회사 임원이 보유 주식 16만7777주를 모두 매도하면서 투자자 불안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임상 3상 중단이 유력해지면서 악재를 해소할 기회를 잃었다.
이번 결과에 따라 주가도 폭락했다. 한때 코스닥 시총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은 기업공개(IPO)로 15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펙사벡 치료제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2017년 1만3250원이던 주가는 15만원이 넘게 뛰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신라젠 주가는 전날 대비 약 30% 떨어진 3만1200원을 기록했다. 시가총액 역시 6위로 내려앉았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인보사에 이어 신라젠 쇼크까지 겹치면서 바이오 시장 악재가 연이어 터진다”면서 “그동안 투자한 자금을 고려해 임상 계획을 새롭게 세워 약효를 입증할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