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아베 정부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핵심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 영역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7월 초 일본은 3개 핵심 소재로 '잽'을 날렸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 회사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장비 분야까지 건드릴 가능성이 크다. 디스플레이 섀도마스크, 센서, 신사업으로 분류되는 탄소섬유, 연료전지까지 사정권 안에 들면서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주 전략물자 중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고위험 품목 159개를 관리품목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비상식적인 규제가 결국 자국 기업에 손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아베 정부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3개 핵심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현재 공정뿐만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 공정 소재 수급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백색국가에서 배제되면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장비도 규제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일례로 트랙 장비가 있다. 반도체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 그림을 그리는 '노광' 공정에서 활용한다. 웨이퍼가 노광 장비로 들어가기 전에 꼭 발라야 할 포토레지스트를 고르게 도포하는 역할을 한다.
트랙 장비는 일본 반도체 장비기업 도쿄일렉트론(TEL)이 시장을 주도한다. EUV용 트랙 장비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차세대 반도체 공정으로 EUV 공정이 주목받는 것에 발맞춰 삼성전자는 EUV 공정 전용 라인을 증축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EUV 포토레지스트에 이어 TEL 장비 수입에도 영향을 준다면 국내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아예 틀어막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국내 생산 업체도 있지만 EUV 분야에서는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전했다.
액체 불화수소를 담아서 반도체에 묻은 산화막을 씻어내는 습식 세정 장비도 일본 회사 점유율이 높다. DNS(다이닛폰스크린)과 TEL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인위적으로 불순물을 넣는 확산 공정에 쓰이는 퍼니스(furnace) 장비도 TEL, 고쿠사이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쥐고 있다. 공정 후 반도체 회로 선폭을 검사하는 전자현미경인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은 히타치제작소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 공정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공장 증설 계획에 나쁜 영향을 주면서 향후 반도체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신에츠와 섬코가 50% 이상 글로벌 점유율을 확보한 웨이퍼 수급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러나 최근 감산 추세, 지난해까지 이어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각 웨이퍼 회사 증설 등 상대적으로 우려는 덜한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각 소자 업체에 쌓인 웨이퍼 재고도 많이 있다”면서 “다만 차량용 전력반도체(PMIC) 등에 활용하는 고부가가치 웨이퍼 시장에서는 일본 업체가 앞서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전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섀도마스크 공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파인메탈마스크(FMM)로도 불리는 섀도마스크는 중소형 OLED를 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스마트폰 고해상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섀도마스크다.
섀도마스크는 종이보다 얇은 인바 소재 금속으로 제작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뚫려있다. 고온 증착기에서 기화시킨 유기물이 섀도마스크를 통과해 기판에 달라붙어 화소를 형성한다. 섀도마스크 두께, 형성된 구멍의 각도 등이 모두 화소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일본 다이니폰프린팅(DNP)이 세계 시장에서 압도적이다.
그동안 국내 업계에서는 섀도마스크를 국산화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시장 지배적인 DNP 입지를 꼽았다. 섀도마스크를 국산화하는 등 공급망 이원화를 시도하면 유일한 공급사인 DNP가 공급을 제한하는 등 견제할 가능성이 있어 국내 기업이 DNP 눈치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센서 분야는 대부분 국산화율이 극히 낮은 만큼 수출 규제에 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품목별로는 △음파탐지장치 △광검출기 △센서용 광 섬유 △전자식카메라 △우주용 광검출기 등이 일본 의존도가 높다. 다만 전략물자가 대부분 국방, 우주·항공 분야에 관련된 품목이라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독일 등 서방권 대체재도 있다.
일본이 시장을 선도하는 탄소섬유 분야도 수출규제 사정권에 들었다. 국내 고성능 탄소섬유는 국내 기술 기반이 취약한 만큼 이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도 수소 연료전지에 쓰이는 분리막 소재 등 일본산 수입 의존도가 크다.
전영택 인천연료전지 대표는 “발전용 수소 연료전지 제조에 필요한 소재는 대부분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파악되고 있지 않다”면서 “업계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전략물자 1194개 중 대일 의존도가 높은 159개 제품을 관리품목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상당부분 품목은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영향이 큰 제품들은 파급효과, 대체 가능성 등을 세분화해 밀착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소재·부품·장비 국가 다변화를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달 전 일본 규제 이후 빠르게 대안을 찾아가는 만큼 일본이 규제 영역을 넓히더라도 공급망을 더욱 탄탄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장기전으로 끌어갈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장비업체 대표는 “우리 반도체 제품을 쓰는 미국과 중국 업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이 정치적 의도로 핵심 소재를 제한할수록 대체재로 각광받는 중화권 기업이 기회를 잡으면서 일본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