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정부가 내놓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이 국내 생태계 구조를 개선하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했다. 업계가 정부에 제안했던 주요 내용이 대부분 반영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적극 동참 의지를 표한 것도 변화 기대감에 한 몫 한다.
특히 그동안 업계에서 제안해온 주요 내용이 대부분 이번 대책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가 먼저 제안한 내용들이 담겼지만 규제 관련 내용은 정부가 먼저 수위를 완화하는데 나서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전향적 변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책에 연구개발(R&D) 지원이 대폭 담긴 것도 의미가 있다. 개발한 기술을 양산 테스트하는 기회를 잡기 어려웠으나 정부가 나서고 대기업이 적극 협력해 양산화 가능성을 높이는데 나서는 것도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 수출 규제로 가장 혼선을 겪은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이번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관련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는 반응이다. 연구개발비 지원뿐만 아니라 세제 혜택, 정부 자금 지원, 환경규제 완화 등에 큰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 한 장비업체 대표는 “실천 의지는 다음 일이지만 이번 대책만큼은 한국 소재·부품·장비 분야 R&D에 새 장을 열만큼 구체적으로 짜여있다”면서 “R&D에 대한 기업 투자와 의지가 이번 조치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R&D 정책이 지금에서야 시행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소재·부품 기업이 느끼는 애로사항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대책에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규제를 대폭 줄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인수합병 시 인수자금과 세제 지원을 하면서 해외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방위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도 있다.
국내 한 소재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가 소재·부품기업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분위기여서 R&D, 대기업과의 협력, 수출 등에서 어려웠던 점들이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해왔다”며 “실제 사업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재부품특별법 상시법 전환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 신설도 호평을 받는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 설립은 정책 연속성을 위해 매우 바람직하다”면서 “정부 기조가 바뀌더라도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하며 지속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재부품특별법이 2021년 일몰되는 형태에서 상시법으로 전환한 것도 주목을 끈다. 박 교수는 “연도별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율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무엇보다 꾸준한 실행이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1년 내 20대 품목 공급안정화, 5년 내 80대 품목 공급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 방안이 예상과 똑같이 될 수는 없다”면서 “긴 호흡으로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쉬운 부분도 나온다. 특히 부족한 반도체 인력을 유인하기 위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반도체 전공 박사들에 대한 병역특례가 많아져야 인력 해외 누수를 막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당근이 될 것인데 이 점이 빠져 아쉽다”고 전했다.
정부 노력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지원 의지가 필수라는 주장도 있다. 테스트베드 등을 통해 만들어진 소재와 부품을 대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의무 구매하는 조항이 있어야 협력 관계와 국산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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