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열어 'Default'(디폴트)를 찾아보자. 어느 인터넷 사전은 '채무 불이행' '체납하다'로 풀이한다. 그러다 한참 아래에 '컴퓨터의 초기 설정이나 표준 설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가 종종 '디폴트 값'이 어떠니 하고 말할 때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언뜻 생소한 이 개념을 '기업은 따져봐야 할까' '이윤과 고객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하고 이런 고민을 당신이 해봤다면 그 자체로 A+를 받을 만하다.
대니얼 골드스타인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에릭 존슨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번 따져보자고 말한다. 당신이 무심결에 정한 제품과 서비스 디폴트 값이라는 게 실상 큰 차이를 만든다. 왜 이 디폴트란 것이 중요할까. 고객 행동에 정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사례는 많다. 장기 기증은 어떨까. 오스트리아에서 디폴트는 기증이다. 싫다고 하지 않으면 기증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독일은 그 반대다. 바란다면 신청을 별도로 해야 한다. 시민의식에 두 나라 간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이 사소한 디폴트 차이가 99.98%대 0.02%라는 차이를 만든다.
그럼 기업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두 교수의 조언은 자신과 고객에 최선인 디폴트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제 두 가지를 해보자. 먼저 내 디폴트가 뭔지부터 구분해 보자. 가장 흔한 것은 이른바 '매스 디폴트'다. 가장 널리 저렴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 온라인 쇼핑에서 아무 요구가 없으면 일반 택배로 보내는 게 이 방식이다.
맞춤 디폴트라는 것도 있다. 고객 성향으로 기준을 잡는 것이다. 과거 창가 좌석을 택했다면 창가쪽, 복도를 원했다면 복도쪽 좌석을 각각 디폴트로 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복도 좌석이 좋으시겠죠?' 대개 승객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 줄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디폴트는 슬쩍 숨겨 놓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항공사 기내식은 이른바 '비프 오어 치킨'이다. 짐짓 선택지엔 쇠고기와 닭고기밖에 없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 채식이나 다른 이유로 음식을 가리는 고객용이 따로 있다. 델 컴퓨터엔 오래 전부터 리눅스가 깔려 있다. 고객이 원할 때 없다면 문제지만 그렇다고 굳이 먼저 말할 필요는 없다.
그다음은 다른 대안을 따져보는 것이다. 고객에겐 가치, 내게는 수익이 되는 대안을 따져보라는 것이다. 입사 후 은퇴연금을 언제든 가입할 수 있을 때와 일단 가입 후 취소 가능할 때 가입률은 두 배나 차이 난다. 제품 구입 후 언제든 고장보험 가입이 가능할 때와 반대로 무조건 가입 후 언제든 취소 가능할 때 고객 선택은 다르다. 거기다 구입 시 가입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조그만 너지(떡밥)를 끼워 넣으면 차이는 더 커진다.

요즘 쓰임새가 흔해진 용어 가운데 아키텍처란 단어가 있다. 구성 요소와 요소 간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두 교수는 디폴트에 고객 선택을 바라보는 통합 디자인이라는 의미의 '초이스 아키텍처'라는 이름을 붙인다.
경영에서 디폴트란 극히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으로 고객에게 더 나은 제안이 가능하다면 달리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 경영학자는 너지에 주목해 왔다. 물론 고객에게 별로 도움 안 되는 꼬드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객과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얘기를 달라진다. 결국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이런 디테일에 있지 않은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