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정보기술(IT) 분야 공급망이 무너졌을 때도 반도체 업체들이 신속한 수입처 다변화로 해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과거에도 있었던 일본 소재 공급망 붕괴에 대처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박 교수는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했던 지진으로 세계 IT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일을 꺼냈다. 당시 반도체 업계에도 큰 격랑이 일었다. 반도체 공정의 시작과 끝이나 다름없는 웨이퍼를 생산하는 섬코와 신에츠, 웨이퍼에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노광 공정에 필수적인 포토마스크를 만드는 호야, 불화수소를 만드는 모리타 등이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박 교수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재빠르게 재고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가 더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다시 불거질 공급망 마비에 대비해 국내 소재 업체를 육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회사들은 해당 분야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을 만큼 주요 소재 강자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일본이 한국 반도체 '급소'를 찌를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당시 절치부심했던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강자 르네사스가 여러개 공장으로 분산 생산하는 등 국가적 대안을 마련했던 것과 대비된다.
박 교수는 “세계 정치권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이전에 형성됐던 글로벌 IT 밸류 체인이 붕괴되고 있다”며 “일본 수출규제 사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첨단 소재분야에서 국가별 다변화가 필수적이고 이런 흐름 속에 국내 업체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모든 소재를 국산화할 수는 없지만 특정 품목에서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재 기업을 키워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해 특히 테스트베드 구축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국내 소재기업은 소자업체에서 요구하는 12인치 장비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국내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소자업체에서 엔지니어를 파견하거나 테스트베드 평가를 통과한 제품은 대기업에서 일정량 구매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재근 교수 발표에 이어 지정토론에서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자립화와 글로벌 수준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소재 분야는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이 참석했고, 부품 분야에서는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장비 분야는 이현덕 원익IPS 대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등이 참여했다.
학계에서는 김태성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참석했다. 법조계에서는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국산화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