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 한국 무역 규제에 맞서 내년부터 바이러스 필터 등 바이오 원·부자재 국산화가 추진된다. 국내 바이오 기업이 속속 일본 원·부자재 대체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정부 국산화 사업으로 '탈 일본' 작업이 속도를 낸다.
21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착수를 목표로 바이오 생산 부문 원·부자재의 국산화 과제를 기획하고 있다. 일본의 무역 규제가 산업 전 영역으로 퍼지면서 당초 계획한 예산보다 두 배 이상 늘려 대응력을 높인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바이오 분야 통제 품목으로 △미생물 △독소류 △생물장비류 등이 꼽힌다. 미생물과 독소류는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국가에서 대체 가능한 수준이다. 배양기, 원심분리기, 교차흐름 여과장치, 동결건조기 등 원·부자재에 속하는 생물장비류는 일본 제품을 많이 쓰는 편이다.
산업부는 일본의 무역 규제로 국내 바이오 기업의 원·부자재 수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시하는 동시에 국산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원료의약품은 특허 설정으로 국산화가 어려워서 기술 장벽이 낮은 편이지만 그 대신 외산 비중이 높은 원·부자재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국산화가 예상되는 품목은 바이러스 여과 필터다. 필터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 가운데 불순물을 걸러내는 핵심 장비다. 국내에서 일본 바이러스 여과 필터 점유율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서 개별 승인을 받아야 수입이 가능하다.
이 밖에 수입 대체가 용이한 세정제를 포함해 고부가 가치 원·부자재인 세포배양액, 생산장비도 국산화 대상으로 꼽힌다. 최대 5년 과제로 현재 16% 수준인 원·부자재의 국산화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
내년 초 국산화 대상 원부자재를 결정하고, 이르면 상반기 중 개발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바이오 기업의 의견도 적극 반영, 개발 방향을 설정한다. 중장기 계획에 따라 시범 적용 후 기능 고도화와 적용 확산도 추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지난 5월 발표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에서도 제시했지만 일본 무역 규제 이슈가 터지면서 예산과 사업 범위를 늘려 신속하게 대응하는 차원”이라면서 “예산이 확정되면 전문가위원회를 꾸려서 당장 국산화가 필요한 원·부자재를 선정, 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예산안이 심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당장 내년에 투입될 예산은 최소 4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기획한 20여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가능한 선에서 예산을 최대한으로 늘려 국산화 범위를 넓히고 중장기 계획까지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국산화 움직임과 함께 업계도 '탈 일본' 움직임을 가속화한다. 셀트리온은 일본 기업에서 수입한 원부자재 약 20종을 미국, 독일 등 다른 국가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전략물자는 아사히카세이 '바이러스 필터' 1종에 불과하지만 추후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20종까지 확대, 교체를 진행한다.
한국바이오협회 역시 20일까지 국내 바이오 기업 대상으로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에 따른 피해·애로사항과 국산화 요구 사항 등을 파악했다. 9월까지 2차 파악을 해서 산업부에 보고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화장품 분야는 일본에서 주로 수입하는 특정 물질을 자체 국산화에 착수했고, 바이오 소재·부품쪽도 약 2건의 국산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9월까지 추가로 국내 기업 대상으로 대체 움직임과 수요 사항을 파악해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