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2011년에는 10만명당 31.2명까지 치솟았다가 지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다. 지난해 기준으로 26.9명이다. 이는 옆 나라 일본(18.5명)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수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보다 연간 근로 시간이 많은 멕시코(5.1명)에 비해서는 5배 이상 많다.
원인은 무엇일까. 가난, 학업 부담, 노인 부양, 근로 환경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다양한 원인을 말하고 있다. 해결해야 하는 사회 문제며,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원인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이 같은 문제가 없는 나라는 있는지 의심을 해보게 된다. 자살률이 월등히 높은 나라는 대체로 뚜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리투아니아(31.9명, 세계 1위), 러시아(31.0명, 세계 2위), 우크라이나(22.4명, 세계 8위) 등은 전쟁 트라우마로 시달리는 사람이 많거나 총기 소지가 자유롭거나 알코올 중독이 만연해 있다는 등 그 나라만의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라틴어로 긴장이라는 뜻의 스트레스는 어떠한 이유로 나타난 증상이지 근본 원인은 아니다. 한국과 유사한 사례를 찾았다. 자살률 세계 3위인 중미 카리브해의 가이아나라는 작은 나라의 자살 원인을 보고 아차 싶었다.
많은 가이아나 주민들은 작은 마을 단위 공동체에서 자신의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표출할 경우 정신이상자로 낙인 찍힐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정신상의 아픔이 있는 사람을 바보 또는 정신이상자로 정의하는 1930년 입법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신이상자로 분류되면 5년 이상 정신병원에 갇힌다. 환자 인권을 보호할 법은 없었다.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임세원 법이 떠오른다. 예전에 마케팅 교육에서 본 미국 뉴욕시 범죄 감소 사례도 생각난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경찰관 수를 늘렸더니 오히려 흉악 범죄가 증가, 실패했다. 다시 범죄자 발생 근본 원인을 찾아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자퇴하지 않게 하는 교육과 범죄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했더니 범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마치 뉴욕시의 경찰관 수를 늘리는 접근법과 같아 보인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법이다. 생전에 사회 낙인 없이 정신과 치료를 해 온 임세원 전 교수의 유지를 이어받아 유가족과 학회는 의료진 안전, 사회 낙인 없는 치료와 지원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 내면 깊숙이 만연해 있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 정신질환자는 폭력성을 띠지 않는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의 폭력성은 일반인과 비교해 심하지 않으며,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의미한 요소는 약물 또는 다양한 환경 요인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은 '남' '그들'의 얘기가 아니다. 영국인과 미국인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정신상에서 아픔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영국인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정신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사실 제정신인 사람은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신과 전문의를 하다가 자신이 미쳐 버릴 것 같아 그만두고 컨설팅을 한다던 강사에게 조직 관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주 재미있게 듣다가 순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한 말이다. 그때 나는 사업 부담으로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던 시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우리 모두가 오해와 편견을 떨쳐 내야 가능하다. 스트레스를 간과하지 말고, 불안·강박·우울감과 같은 감정을 능력 문제라며 억누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정신건강 관련 지식을 넓히고, 더욱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 미약하나마 나는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정기 측정해 보고,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용훈 옴니씨앤에스 대표 yhkim525@omnic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