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했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일본이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할 정도로 무시해온 데 대한 대응이다.
칼만 꺼내들었다고 상대측에서 무서워하진 않는다. 쓸 줄 아는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외교 문제는 결국 외교로 풀어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는 일순위로 능력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오히려 한미동맹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확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소통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그 자체로, 또 다른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
과거사 문제와 영유권 갈등 등으로 일본과 껄끄러운 중국·러시아와 협력 인프라를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다음달부터 정상급 다자외교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9월 초 러시아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리고, 9월 말 미국에서 유엔총회가 있다. 이어 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이 개최된다. 동방경제포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가한다. 현재로선 하반기 다자회의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적 해결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문 대통령의 참여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과도 마주해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당당하게 내린 우리의 결정이다. 10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계기가 될 수 있다. 악화된 양국 관계로 민감한 시기라 전략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직접 대면을 피하기보다는 더 당당하게 일본에 우리가 원하는 양국과의 미래관계를 전달해야 한다. 뽑은 칼은, 칼집에 다시 꽂을 때까지 칼끝의 방향이 흔들려선 안 된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