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지자체 바이오 클러스터 붐, 명과 암

[이슈분석]지자체 바이오 클러스터 붐, 명과 암

전국 팔도가 '바이오 메카' 만들기에 안간힘을 쓴다. 세계가 바이오 경제시대를 맞고 있는 데다 정부도 바이오산업 육성을 천명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도구로 놓칠 수 없는 카드다.

올해만 지자체에서 발주한 바이오·헬스 발전방안 마련 연구용역이 10여개가 넘는다. 대부분 클러스터나 지원센터 구축·확장이 핵심이다. 클러스터는 '사람'과 '돈'이 몰리는 고부가가치 인프라다. 지자체 입장에서 하나만 잘 구축하더라도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크다.

이 현상을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기존 바이오·헬스 클러스터가 성공했는지 △시장 요구는 있는지 △클러스터를 조성할 기반은 있는지 △구축 예산은 확보했는지 등이다. 지자체 대부분이 수립 중인 클러스터 구축·발전 전략은 사실상 중앙 정부 예산 확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세밀한 전략, 장기 비전 없이 '묻지마식' 클러스터 구축 경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자체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구축 열기의 명과 암을 살펴봤다.

◇올해만 지자체 연구용역 14건, 뜨거운 바이오 열풍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지자체 바이오 집적시설 구축 및 산업 발전 방안 연구용역은 14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경상북도 2건, 경기도 1건 등 총 3건이었던 것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수도권에서는 서울시가 '서울바이오허브 기업 유치 전략'을 마련 중이며, 인천에서는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인천테크노파크, 인천시경제자유구역청이 각각 전략을 짜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충남 해양바이오 산업 육성 기본 계획 수립(충청남도) △유전자의약산업 진흥 기반 구축 사전 타당성 연구(대전테크노파크) △재활헬스케어힐링스파산업진흥원 설립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아산시) 등이 진행 중이다.

전라도도 바이오 붐이 뜨겁다. 장흥군에서는 바이오식품단지 확장 구축을 위한 실시계획 변경 연구용역이 발주됐고, 전라남도는 바이오 메디컬 허브 구축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연구용역도 공고했다. 이어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바이오 컨버전스 전략 및 바이오 융·복합 산업집적단지 구축 방안' △화순군 '바이오헬스 융·복합 지식산업센터 건립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분석' △진안군 '마이산 헬스 관광벨트 조성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사업도 발주됐다.

경북지역에서는 △한국생산연구원 주관으로 '영천시 바이오메디칼 혁신 생태계 활성화 전략 수립'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첨단의료복합단지 발전 방안 마련' △안동시 '경북 바이오 일반산업단지 개발계획 변경' 연구 용역이 발주돼 수행 중이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도 바이오헬스 단지 조성을 주축으로 '바이오산업 진흥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정교해진 전략, 인프라 확장에는 긍정적

바이오를 향한 지자체 뜨거운 관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바이오·헬스산업은 연구소, 대학, 병원 등 연구시설부터 대규모 생산시설까지 포함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기업뿐 아니라 지식집적 영역인 대학, 학교, 연구소까지 유치할 수 있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2000년대부터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지역거점이 시작되면서 지자체 클러스터 구축 열기는 뜨거워졌다.

2017년부터 신약 기술수출, 바이오시밀러 세계시장 진출 등 성과에 기반한 '제2 바이오붐'이 일면서 지자체 '바이오산업 키우기'가 재점화했다.

이런 열기도 급속한 성장기를 맞은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산업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과거 세밀한 전략 없이 트렌드에 편승해 중앙정부 예산만 따자는 '묻지마식 유치'와 비교해 보다 정교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자체 대부분이 시설, 환경 등 기반을 확보하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인천은 국내 대표 바이오·제약사가 위치한 데다 셀트리온과 2030년까지 25조원에 달하는 자원을 투자할 계획까지 발표해 클러스터로 변모할 기회를 마련했다. 서울시 역시 서울바이오허브가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해 확장하는 상황에서 기업 유치를 본격화해 클러스터 완전체를 지향한다. 지역 바이오기업 글로벌 진출 성공 사례를 확보한 춘천과 특화된 바이오 기술로 지역 벨트 구상을 밝힌 전라도도 고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기업에도 긍정적이다. 2017년 우리나라 바이오 신규 창업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창업 붐도 뜨겁다. 오랜 연구개발이 필요한 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 유치가 아닌 이상 사무실이나 연구시설을 임대하는 것조차 버겁다. 지자체가 이 같은 시설을 갖춘 집적공간을 많이 구축할수록 이용 가능한 선택지가 많아진다.

전은형 제이바이오리서치 대표는 “최근 초기 바이오 스타트업이 엄청 늘고 있는데, 이들의 고민은 사무공간과 연구장비, 네트워크, 교육기회 등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클러스터는 기본적으로 사무공간이나 공용 연구시설 등을 갖춰서 스타트업이 입주하기 최적 인프라인데, 전국에 이런 집적 단지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장기 비전 없이는 무용지물, 세밀한 전략 세워야

지역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열기를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만 좇는다는 지적이다.

우선 지자체 대부분은 클러스터를 비롯한 집적단지나 지원센터를 건립할 재정적 여력이 안 된다. 올해 14건이나 되는 전략 수립 연구용역 역시 중앙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가 3대 신수종 산업으로 바이오를 지목, 국가 차원에서 자원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비전 없이 당장 예산 확보 경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분야에 정부 예산이 많이 몰리다보니까 지자체는 과제를 따내거나 시설을 유치해 성과를 내는데 집중한다”면서 “바이오·헬스 영역은 10년 이상 꾸준히 투자가 필요한데, 지자체장은 시설이나 기업 유치 등 단기 치적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 어렵다”고 비판했다.

현실적인 조건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10개 바이오·헬스 클러스터와 23개 BT특화센터가 존재한다. 오송과 대구는 국가 지원으로 설립·운영돼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한 데다 서울과 인천은 아직 완전체라고하기에 부족하다. 지역은 물론 국가차원에서도 성공적인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아직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은 혁신적인 전략과 막대한 자본이 아니고서야 성공 가능성은 낮다. 특히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기업이나 우수인력 유치가 어렵다. 서울과 인천, 광교까지 바이오·헬스 클러스터가 존재하거나 구축 예정인 상황에서 유인책 마련도 쉽지 않다.

김연수 충남대 신약대학원 교수는 “클러스터 성공 여부는 우수한 인력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서 “전문성을 가진 우수 인력이 모이려면 도시 환경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대규모 인력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몰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