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조현병 환자의 잇따른 강력범죄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사람들 머릿속에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조현병 환자 보호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억울한 인식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병을 감추려 하다 보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환자의 돌출 행동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살펴보자. 조현병은 일종의 뇌질환이다. 자폐증, 치매,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 소시오패스 등이 모두 뇌질환에 속한다. 뇌세포는 정상인데 배선이 잘못돼 발생하는 병이다. 문제는 배선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뇌지도 연구는 바로 이같은 숙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뇌지도(커넥톰:Connectome)는 뇌 신경세포(뉴런)와 신경세포를 잇는 신경망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보면 된다. 구글어스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뇌 전체에서 점점 확대해 들어가면 뇌 신경세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하기 그지없는 뇌 구조를 보기 쉽게 지도로 그리는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몇년 동안 주춤했던 뇌지도 연구에 다시 불이 붙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이 점차 가능해 지는 덕분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발달은 그동안의 한계를 뛰어 넘어 뇌 연구 속도를 높여주고 있다. 주로 치매, 우울증, 자살 등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급증하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관심이 모아지는 추세다.
한 뇌연구자는 “최근 5년 사이에 AI, 빅데이터 분석, 고해상도 3D 현미경 등 첨단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뇌 연구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면서 “그동안 기술적 한계에 봉착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서서히 한계를 넘어선 연구결과를 내보일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뇌지도 제작, 구글 참여로 관심 증폭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구글은 AI 기술을 이용해 인간 뇌지도 제작에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인간 뇌가 신경망으로 연결돼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학문인 연결체학에 구글 AI 연산과 매핑(지도화)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어스와 같은 뇌지도 제작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뇌지도 제작에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해석해야한다는 점이다. 나노미터(㎚:100만분의 1) 수준 뇌 조직을 3D이미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 컴퓨팅파워가 필요하다.
가령 생쥐 뇌를 지도화한다면 100테라바이트(TB:10만2400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인간 뇌를 매핑한다면 100엑사바이트(EB:1억0485만7600테라바이트) 데이터가 발생한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도 부담스럽지만 데이터를 분석해 지도화하는 것은 더 어렵다.
결국 구글 AI가 데이터를 분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글의 뇌지도 제작 도전은 AI와 빅데이터 등 글로벌 IT기업이 뇌 관련 연구에 주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뇌지도 알고리즘 기반 제품 출시도 뇌 연구 관심 높여
뇌지도 제작과 관련 국내에서 가장 앞선 연구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곳이라면 조선대 치매국책연구단을 꼽을 수 있다. 연구단은 치매 분야 한국인 표준 뇌지도 작성과 뇌영상 분석 알고리즘을 개발한 곳이다.
연구단은 올해 초 한국인 표준 뇌지도 작성 및 뇌영상 분석 알고리즘을 적용한 치매예측의료기기 '뉴로아이'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뇌지도와 뇌영상 분석알고리즘을 채택한 의료기기로는 세계 최초라는 설명이다.
연구단의 한국인 표준 뇌지도 작성과 뇌영상 분석 알고리즘 기술기반 치매예측기술은 지난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기술뉴스'에 뽑히기도 했다.
치매 관련 연구 노하우를 기반으로 연구단은 지난 4월 한국뇌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단 내 한국뇌연구원 협력연구단을 개소했다. 한국뇌연구원 광주협력연구사업은 향후 5년 동안 98억원을 투입, 치매 원인 규명과 조기예측, 치료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연구단의 성과는 뇌지도 관련 기술을 적용해 실제 치매 분야에서 활용가능한 완제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뇌지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뇌지도 연구 도화선된 첨단기술
뇌지도 핵심인 신경회로 연구와 관련해 게임, 고해상도 3D현미경,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이 접목돼 거둔 연구 성과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올해 초 뇌지도를 3D로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뇌 개별 신경세포를 찾는 것은 물론, 이들 사이 연결을 추적하고 대량의 뇌 조직 세포를 시각화할 수 있다. 뇌 조직을 확장하는 방법을 이용해 격자 광시트 현미경으로 알려진 3D현미경 기술로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어냈다.
여기에는 팽창 현미경과 격자 광시트 현미경을 결합한 새로운 현미경을 이용했다. 일반 전자현미경으로 연구했다면 수십년이 걸릴 일이다. 연구팀은 약 10만개 뉴런을 포함하고 있는 초파리 전체 두뇌를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했다.
게임을 활용한 뇌질환 연구도 새로운 시각과 기술이 거둔 성과다. 컴퓨터보다 앞선 시각정보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을 활용한 연구기법이다. 프린스턴대 한국인 과학자 세바스찬 승 교수는 생쥐 망막 신경세포 연결망을 찾는 게임인 '아이와이어'를 개발했다.
승 교수는 지난해 김진섭 한국뇌연구원 신경회로연구그룹장(책임연구원)과 공동으로 국제학술지 '셀'에 아이와이어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쥐 망막에서 눈과 뇌를 연결하는 47개 시각 통로를 찾았다는 연구성과를 실었다. 뇌연구자들 사이에는 시각 뇌지도 제작에 한걸음 다가선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가 지난해 개발한 현존 최고 수준 해상도 뇌혈류지도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결과물이다. 전국 11개 대학병원 뇌경색 환자 1160명 뇌영상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돼 뇌 어느 부위에 뇌경색이 주로 발생하는지 의미있는 통계적 확률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연구자들은 뇌지도 제작은 다양한 연구기법을 개발할 수 있는 첨단 연구장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가에서 뇌 관련 연구가 앞서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종철 한국뇌연구원 신경회로망사업단장은 “뇌지도 제작은 조현병, 자폐스펙트럼증후군 등 뇌질환 원인의 회로 수준 이해를 얻고 이를 통해 손상된 신경회로의 기능적 우회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면서 “최신 장비 도입과 개발이 연구 속도를 좌우하는 분야인 만큼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다학제적 융합연구를 통한 장비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