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네패스 오창 제2공장.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은 반도체 패키징 작업으로 분주했다. 현미경 앞에 앉은 직원은 동그란 모양 웨이퍼를 유심히 관찰하며 패키징 불량 유무를 확인했다. 공정이 끝난 웨이퍼와 기록지를 꺼내들고 기기들 사이를 바쁘게 걸어 다니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날 기자가 들여다본 팹에는 패키징 공정 중에서도 '커팅' 작업을 하는 장비들이 있었다. 어떤 기기는 웨이퍼 위에 만들어진 예비 칩(다이·die) 모양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확대된 화면을 사진 기록으로 남겼다. 네모 모양으로 잘라 필름 모양처럼 생긴 칩 보관함 '소켓'으로 옮기는 기기는 재빠르고 정확했다.
네패스 관계자는 “장비들이 공정 중 발생한 불량 유무를 더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탑재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웨이퍼가 아닌 패널 단위로 칩을 한 번에 패키징하며 비용 절감을 노리는 패널레벨패키지(PLP) 공정 라인도 준비 중이다. 내년 상반기 가동이 목표다.
공장 곳곳에서 나오는 공정 완료를 알리는 멜로디, 빼곡하게 들어찬 장비에서 나오는 '윙' 소리, 직원들의 분주한 발걸음은 반도체 불황기에도 고공행진 중인 네패스 저력을 실감케 했다.
네패스는 국내 후공정(OSAT) 업체를 대표하는 회사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후공정(OSAT) 업체는 파운드리에 웨이퍼를 넘겨받아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 회사를 일컫는다.
OSAT 업체 종류는 다양하다. 일례로 칩 성능을 테스트하는 기업, 인쇄회로기판(PCB)과 전기 신호를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동그란 단자(솔더볼)를 여러 개 끼우는 범핑 업체가 있다. 웨이퍼를 칩 모양으로 자르고 포장하는 패키징 업체도 있다.
네패스는 지난해 말부터 통합 OSAT 회사로 변신했다. 범핑, 테스트, 패키지 공정을 네패스 팹 안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턴키' 방식을 구현했다.
각 공정을 각자 다른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고객사 입맛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네패스의 무르익은 웨이퍼레벨패키지(WLP) 기술도 고객사 주문량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WLP는 웨이퍼를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도 패키징하는 기술을 말한다.
선진 기술 구현에 힘입어 네패스는 올 상반기 호실적을 거뒀다. 올 상반기 회사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무려 272.8% 증가한 154억34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 증가율(39.66%)보다 7배 가까운 성장률을 남긴 것이다.
김태훈 네패스 사장은 “5G 시대 개화로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좋은 시장 상황이 맞물렸다”며 배경을 밝혔다. 네패스 패키징 매출의 약 70%는 플래그십, 하이엔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칩 후공정에서 나온다.
김 사장은 “네패스의 납기 단축, 품질 향상, 수요 대응, 포트폴리오 확대, 기술 발전으로 인한 패키징 가격 인상 등이 골고루 작용해 좋은 실적을 기록했던 주요 요인이었다”고 덧붙였다.
네패스 외에도 국내에서 WLP 기술이나 선진 범핑 기술을 구현하는 OSAT 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국내에 관련 기술로 후공정하는 회사가 제한돼 있어 '수요 과잉'이 발생할 정도다.
그는 국내 OSAT 사업이 기회를 맞은 것으로 봤다. 그는 “5G 시대로 통신 패러다임이 바뀌고, 대기업인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OSAT 업체들에게는 상당히 큰 기회”라고 설명했다.
대만 파운드리 TSMC 등 파운드리 회사의 후공정 작업 내재화 움직임이 있지만, OSAT 업체 미래는 밝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칩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변수가 있어 전문 업체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사장의 의견이다. 후공정 장비 투자도 만만찮아 파운드리 업체들에게는 부담이다.
현재 글로벌 OSAT 업계는 중화권이 강세다. 삼성전자와 정부의 대규모 투자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커져도, 패키징 물량은 중국과 대만으로 흘러들어가 중화권 기업에만 좋은 일을 한다는 게 관련 업계 하소연이다.
김 사장의 시각도 같다. 국내 파운드리 사업 덩치가 선진화되고 커지면, 후공정도 당연히 따라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후공정 분야까지 과감하게 투자를 확대하면 전도유망한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사장은 “설계와 파운드리 분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반도체 패키징 사업 가능성을 인지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인 세제 혜택과 관련 분야 인재 확보 등으로 미래 유망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전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