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게임을 만들어 출시했다. 3년을 10명 이상 개발자들과 함께 했다. 많을 때는 30명이 넘기도 했다.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을 포기했다. 대신 중국게임을 현지화해서 한국에 들여온다.”
중소기업 대표 A씨는 2013년 가을 대기업 게임 부문 사업조직에 사표를 던지고 게임사를 설립했다. 그해 열린 모바일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서였다. '애니팡' '윈드러너' '드래곤플라이' 같은 캐주얼 게임은 MMORPG 개발자 몇 명 불러모으면 뚝딱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2015년 봄. 런게임을 출시했다. 직장생활 15년과 은행대출 그리고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돈으로 만든 게임이었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100개 가까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게임 이름 하나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절치부심해 후속작을 개발했을 때는 이미 미드코어 장르로 시장이 변했다. 흥행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도탑전기' 이후 국내 출시에 가속을 붙인 중국게임이 우리나라 캐주얼게임이 빠진 매출 순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A대표 회사 규모로는 속도와 자금 그 무엇도 경쟁할 수 없었다. 넷마블을 이끄는 방준혁 의장조차 중국게임 경쟁력을 주시하고 속도 경쟁에 대해 언급할 때였다.
A대표는 “어떻게든 게임 쪽에서 유지 해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봤다”며 “중국게임 중 로열티가 적은 게임을 여러 개 들여와 서비스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웹게임 영향으로 당시 중국 미드코어 게임은 한국보다 한 단계 나아간 자동전투와 매출 구조가 대부분 탑재돼 있었다. 중국 서비스로 추가된 콘텐츠도 풍부했다.
대표로서는 개발보다 시간과 돈이 덜 드는 중국게임이 매력적이었다. 실패했을 때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고객응대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적은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게 기뻤다.
A대표는 “지금 구글플레이 매출 500위권에 게임 3개 정도만 서비스하면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5명 월급 주고도 쏠쏠한 돈을 벌 수 있다”며 “굳이 힘들게 개발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랜 시간 몸 담았던 한국 게임산업에 대해 걱정은 잊지 않았다.
그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중국게임을 받아오고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업계에 늘면서 중국게임사가 한국 게임사에 먹튀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며 “대기업이 버티고 있지만 허리와 바닥이 게임개발과 멀어진다면 한국 게임 산업은 중국에 종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중국게임 때문에 자리를 빼앗겼는데 중국게임 때문에 먹고산다”며 “웃프다(웃기면서도 슬프다)”고도 덧붙였다.
중국게임 공습에 폐업해버린 중소 게임사도 있다. 개발자 출신 대표 B씨는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 매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B씨는 안정적인 대형 게임사 개발자였다. 모바일 붐에 편승해 창업 후 몇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대박을 향한 희망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중국게임 공습이 시작된 후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지금은 업계를 떠났다.
그는 잘 나가는 대기업 게임 중간 관리자였다. 안정적인 생활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개발자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다는 말에 창업을 결심했다.
첫 게임은 빛을 보지 못했다. 정부 지원사업을 하면서 꾸역꾸역 버티며 출시한 후속작은 조금 나았다. 마지막 도전으로 시작한 세 번째 출시는 후속작 덕분에 출시 전부터 투자를 받고 중국 출시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중국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게임이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집행하면서 트래픽을 가져갔다. 집을 팔고 대출을 받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변변한 마케팅 한 번 할 수 없었다. 광고는 대기업 아니면 중국게임사만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약속했던 중국 출시도 판호가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믿었던 중국 출시가 기약없이 늘어지자 빚더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B씨는 “하루에도 감정기복이 몇번씩 왔다. 어떨 때는 우리 게임이 안 좋아서 실패했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연예인들 앞세워 광고하는 중국게임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며 “물량전이 가능한 중국 자본이 국내 게임 시장에서 맘껏 뛰노는데 우리는 진출하지 못한다면 결국 국내 개발사는 모두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