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권고로 가동이 중단된 공공기관·다중이용시설 에너지저장장치(ESS) 300여곳이 10개월째 단 한 곳도 재가동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ESS 재가동을 위한 추가안전조치 방안이 마련됐지만 비용·안전성 문제가 지속되면서 설비가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추가안전조치 이행 비용으로 78억원을 책정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17일 전자신문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정부 권고로 가동을 멈춘 공공기관·다중이용시설 ESS 사업장 306곳 중 추가안전조치를 이행한 곳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ESS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자 1월 13일 행정안전부를 통해 다중이용시설과 공공기관에 설치된 ESS 가동중지를 명령했다. 이후 지난 6월 ESS 화재 원인 및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기 보호장치·비상정지장치 설치 △배터리 과충전 방지 △운용환경 관리 구축 등 모든 사업장이 지켜야할 공통안전조치 사항을 내놨다. 현재까지 공통안전조치를 이행한 전국 ESS 사업장은 1173곳 중 104곳(8.8%)이다.
또 산업부는 이미 가동이 중단된 시설에 대해서는 △방화벽 설치 △다른 설비와 이격거리 확보 등 추가안전조치 이행 후 재가동하도록 하되 다중이용시설 등은 소방청 특별조사 결과에 따라 조치 명령을 받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추가안전조치를 실시한 ESS 사업장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산업부는 공통안전조치가 각 사업장 ESS 설비 안전강화를 위한 것으로 판단해 소유자·업계가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고, 방화벽 설치 등 추가안전조치는 인명피해 방지를 위한 것으로 정부가 비용 일부를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4개월이 넘도록 정부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추가안전조치를 이행해야 할 ESS 사업장(공공기관·다중이용시설)이 모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 의원도 ESS 사업장이 추가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이유로 △방화벽·소방시설 보강에 수 천 만원 비용이 소요되고, △방화벽 설치 등은 화재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손꼽았다. 그는 또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수익 목적이 아닌 의무로 ESS를 설치했기 때문에 추가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그냥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가 지속되자 산업부는 지난 11일 ESS 추가안전조치 이행 지원 사업에 78억원을 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력산업기반기금 중 일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12월 10일까지 추가안전조치를 이행한 사업자에 한해 지원할 방침이다. 대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최종 제외됐다. 공공기관과 중소·중견기업이 3000만원 한도 내에서 설치비용의 50~70%를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방식을 놓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과 신청 기간 등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선착순' 식으로 소수 한정된 기업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김 의원은 “사업자 잘못이 아닌 ESS 화재 위험 때문에 가동을 멈췄는데도 불구하고 10개월째 재가동을 개시하지 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곳이 상당 수”라며 “정부가 손실을 보상해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부 정책을 믿고 ESS 사업에 뛰어든 국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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