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태국 '아세안+3' 정상회의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단독 환담을 가졌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계기 정상회담 이후 13개월 만에 이뤄진 양국 정상 간 대화다. 두 정상은 한일 간 현안을 대화로 해결하고 관계 진전에 노력해 나간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11분간의 단독 환담의 시간을 가졌다”며 “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매우 우호적이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환담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날 환담은 문 대통령이 정상회의 시작 전 아세안 정상들과 대화하던 중 뒤늦게 회의장에 도착한 아베 총리에 대화를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환담은 오전 8시 35분부터 8시 46분까지 11분간 진행됐다.
청와대는 두 정상 간 깜짝 만남을 '회담'이 아닌 '환담'으로 표현했다. 양국 간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비공식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전날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 전 마련된 갈라 만찬에서도 두 정상은 조우했지만 악수를 겸한 짧은 인사만 나누고 별도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양국 정상의 직접 대화는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계기 정상회담 이후 처음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환담에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고 대변인은 “양 정상은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한일 양국 관계의 현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며 “또한 최근 양국 외교부의 공식 채널로 진행되고 있는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관계 진전 방안이 도출되기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외교부의 공식 채널을 통한 협의 외 별도의 고위급 협의도 제안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하자”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고위급 협의가 한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는 '확정적으로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이날 환담과 관련해 청와대측은 “대화를 통해 한일관계가 조금 더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날 환담으로 두 정상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이달 23일 전에 극적으로 재회해 양국 관계 개선의 물코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 과제와 한국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거듭 당부했다. 특히 △위기 공동 대응 협력체계 △미래 인재 양성 △아시아 연계성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테러, 기후변화, 재난 등 초국경적 도전 과제들은 특히 인구가 밀집된 아시아에서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라며 “개별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아세안+3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질서 유지를 위한 아세안+3 국가 간 협력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자유무역 질서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내고, 축소 균형을 향해 치닫는 세계 경제를 확대 균형의 길로 다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타결은 역내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확대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 번영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북미 간의 실무협상과 3차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며 “한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위에서 대륙과 해양의 장점을 잇는 교량국가로 동북아와 아세안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