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빛공장 방사광가속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기초과학부터 응용연구, 산업계에까지 두루 활용되는 국가 연구시설이 있다. 학문 분야로는 물리학, 화학, 바이오, 지구과학까지 포괄하며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이 대형연구시설은 바로 방사광가속기다.

강력한 자석으로 이루어진 원형가속관으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면 접선방향으로 매우 강하면서도 결이 맞는 다양한 빛이 나오게 된다. 이 빛을 용도에 맞게 골라 빔라인으로 뽑아내는 곳이 바로 방사광가속기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라는 이름보다는 '빛공장'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 다양한 빛을 이용해 정밀 극한 분석을 수행하고, 새로운 물질 개발연구에 활용 가능하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는 필수다. 연구와 산업계를 아우르는 국가적 공동활용 대형연구시설로 평가된다.

10여년 전 새로운 방사광가속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단순하게 이용자 측면에서 빔라인이 포화됐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사광가속기가 만들어내는 빔 품질과 안정성, 결맞음 등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가 중요 포인트다.

최신 글로벌 트렌드를 살펴보면 확실하게 10년 전과 연구환경 및 수요 요구가 달라졌다. 포항 방사광가속기가 그동안 국가 유일 지위로 한국과학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국가수준 방사광가속기로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현재 유럽과 일본, 미국은 기획단계부터 첨단 방사광가속기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발생했고 한계에 봉착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사광 빔이 필요하고 이를 사용하면 우리 삶이 어느 수준까지 나아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또 산업체 지원에 대한 계획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일본이 오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센다이에 건설 중인 여덟 번째 대형방사광가속기는 전체 빔라인 70%는 무조건 산업지원용으로 잡고 있으며, 나머지 30%를 학교와 연구소가 연구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더욱이 일본에선 가속기 구축 시 무조건 두 개 이상 빔라인을 지역산업 지원용으로 전용하게 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가를 찾기 위한 서치프로그램을 지역산업계와 함께 운용하고 있다.

유럽 싱크로트론 방사선연구소(ESRF) 역시 23개 기업과 협약을 맺고 전체 빔 사용시간 절반 이상을 기업체에 제공하고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인력양성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전문성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좋은 교육플랫폼 역할도 가지고 있다. 이미 세계 방사광가속기 시설과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우수 연구인력을 훈련·배출하고 있고, 이들이 전문가가 돼 다시 새로운 인력을 양성하는 선순환구조가 확립돼 있다.

그렇다면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어떤 과학적 결과들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일까. 방사광가속기는 개인이나 대학, 연구소, 기업이 단독으로 구축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결코 아니고 국가적 공동 활용을 전제로 국가 지원으로 구축할 수 있는 거대인프라 연구시설이다. 달리 말하면 그 나라의 실질 과학기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기초과학부터 조선, 자동차, 비행기 산업에 활용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개발에 핵심분석을 제공하고 신약개발에 필요한 구조단백질 분석을 지원하는 거대연구시설로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틀을 벗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또 학교와 연구소 틀을 벗어나 산업체와 밀접한 관련을 만드는 글로벌 변화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25년된 방사광가속기 하나를 국가단위 시설로 가지고 있으면서, 여전히 학교와 연구소라는 틀 안에 갇혀있지 않은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얕은 너울이 오고 있지만 머지않아 쓰나미가 몰려올게 분명한데 그 때 과연 우리는 과학기술과 결합된 산업을 앞세운 그 쓰나미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나 생각해보자.

이주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 jouhahn@kb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