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걸려 만든 '달 궤도선 사업계획' 두 달 만에 '백지화'

당초 '원·타원 궤도' 정부안서 나사 'WSB 전이 궤도' 제안 수용

정부가 지난 9월 개정한 달 궤도선 사업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달 궤도선 사업 관련 기술 협의에서 당초 수립한 우리 측 계획과 전혀 다른 NASA 측 제안을 받아들였다. 1년 동안 진통을 겪은 궤도선 사업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끝났다. 파트너인 나사와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우리 계획도 졸속으로 수립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항우연은 지난 19일 미국 휴스턴 존슨 우주센터에서 열린 2차 달 궤도선 사업 기술 회의에서 NASA가 제안한 WSB(Weak Stability Boundary) 전이 궤적, 장·단 반경 100㎞ 원궤도를 따르는 운항 계획을 유력 대안으로 놓고 협의하고 있다. 회의는 21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다.

이는 정부 계획과 완전히 다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9월 '달 탐사 사업계획 변경안'을 확정했다. 달 궤도선 발사 시기를 2022년 7월로 19개월 늦추고, 9개월은 타원궤도(장반경 300㎞, 단반경 100㎞)에서 운항하고 3개월은 원궤도에서 궤도선을 운항하는 것이 골자다. 연료 절감을 목적으로 원·타원 궤도 병행안을 택했다. NASA는 '최적 대안이 아니고,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항우연 계획대로 궤도를 돌면 북극 지점을 지날 때 당초 대비 고도가 3배나 높아져 사업 목적인 달 촬영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NASA는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항우연과 1차 기술회의를 열고 달 주변까지 가는 데 드는 연료를 절감하되 1년 동안 오롯이 원궤도를 도는 방안을 제시했다. 세부 대안으로 WSB 전이궤도 카드를 꺼냈다. WSB 궤도를 운항하면 극복해야 할 기술 난제가 많다. 이 궤적을 택하면 지구로부터 최대 150만㎞ 멀어지며, 전이 기간도 3∼4개월 길어진다. 한 대학 교수는 “계획보다 멀리 오래 가야 하고, 처음 시도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난도가 크게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교수는 “기존보다 3배 먼 거리로 돌아 기술 난도가 높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과 항우연은 NASA 측이 기술 이전까진 아니라 하더라도 앞서 축적한 관련 데이터 등과 정보를 제공하며 후방에서 지원하면 WSB를 포함한 대안을 최종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기술 문제와 별도로 달 탐사 사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난맥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과기정통부는 9월 '달 탐사 사업계획 변경안' 발표 당시 우리가 확정한 계획에 대해 NASA 측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2개월 만에 오판으로 드러났다.

항우연 내부에서도 일찌감치 WSB 궤도 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3월 WSB 궤도 등을 포함해 9가지 대안이 포함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독자 수립한 사업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전체 사업 일정이 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달 탐사 사업 계획 발표에 앞서 NASA 측에 우리가 수립한 궤도 계획을 전달했지만 즉답이 오지 않아 일정에 따라 우리 계획을 먼저 발표했다”면서 “최종 사업 계획은 NASA와의 협의와 이행 가능성을 따져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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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기자 snoop@etnews.com,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