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올해 초 내세웠던 2년 연속 연간 수출 6000억달러 달성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10월까지 누적 수출은 4528억달러로 당초 목표치 달성에 크게 모자란다. 이처럼 올해 수출 실적이 부진한 데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에 따른 갈등과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 등 각국 보호무역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양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교역을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제조업과 상품 교역에 의존하는 국가의 경제가 부진하다.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내년도 세계 교역 전망 역시 앞을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 갈등에 세계 교역 위축
수출 부진은 우리나라 경제만의 특징은 아니다. 미국발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며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5개월간 주요 20개국(G20)에서 도입한 보호무역 조치로 영향을 받는 교역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에 육박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2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이후 10월 중순까지 도입된 G20의 무역제한 조치는 총 4604억달러(약 542조원) 규모 교역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4810억달러)에 이어 역대 2위 규모다. 직전 조사기간(2018년 10월~2019년 5월, 3360억달러) 대비로는 37% 늘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관세 폭탄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교역 규모를 위축 시킨 것이다.
무역제한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주요국 수출도 내리막이다.
WTO가 발표한 8월 기준 각국 수출 동향을 보면 중국과 미국이 각각 1.0% 감소한 것을 비롯해 독일 7.5%, 일본 4.0%, 프랑스 2.9%, 영국 16.9% 하락하는 등 수출 감소가 전반적인 현상으로 퍼졌다. 우리나라는 이 기간 13.9% 수출이 하락해 하락세가 다른 나라 대비 컸다. 중국과 미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수출 구조 특성상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은 것이다.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주요 제조업 중심 국가 대비 우리 수출 감소폭이 더 큰 이유는 중국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크고, 반도체 등 특정 품목 의존도가 높은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세계 교역이 이처럼 줄어든 데는 글로벌 양강인 미국과 중국의 관세 부과 전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 500억달러 규모에 관세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분쟁의 서막이 열렸다. 이후 중국이 미국산 축산품 등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맞대응한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양국간 정상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에 만났지만 좀처럼 물러서지 않으면서 무역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변 둘러싼 통상환경도 부담
글로벌 G2의 보호무역정책 외에도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 통상환경도 우리 경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가깝게는 지난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산업의 불확실성을 높였다.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면서 언제든지 일본 정부의 의도대로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일본 수출 규제 영향으로 10월 수출은 13.8% 감소했고 수입도 23.4% 감소하면서 한·일 갈등이 교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일본 역시 10월 한국 수출이 23.1% 감소했다. 지난 9월 감소폭 15.9%보다 더 커졌다.
양국간 수출 규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예정됐지만 일본이 규제를 풀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일정보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와 징용공 배상 문제 등 정치적 문제가 얽혀 실타래를 풀기 좀처럼 쉽지 않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압박도 아직 끝나지 않은 카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 조사 결과에 따라 지난 13일까지 수입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이 어려워지자 '무역법 301조' 카드를 내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미국은 이 조항에 따라 유럽연합(EU), 일본, 우리나라 등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반면 301조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할 때 적용한 법이다.
산업부 통상분야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이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의견중 하나일 뿐”이라며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자동차 관세와 관련한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적극 외교와 시장 확대로 돌파구 마련 필요
전문가들은 내년도 교역 상황도 순조롭지 않다는 점에서 외교적 노력과 함께 시장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2020년 주요산업별 경기전망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내고 “내년도 선진국 경기 부진이 예상된다”며 “대외 불확실성의 리스크가 국내 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고 수출 경기 회복을 위해 수출 품목 및 국가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통상마찰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내년 수출이 기저효과로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2017년 이후 추세적인 하락인 만큼 잠재성장률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와 무역 분쟁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정부는 해외 신시장을 개척하고 국내산업의 혁신을 촉진함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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