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끔 옛날 생각이 많이 나고, 저녁이 되면 가슴이 쿵 내려앉을 때도 있는데 괜찮아.”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직장 여성이었던 지영이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점점 자신을 잃으며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영은 단순히 우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가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돼 빙의 형태로 마음 속 이야기를 전하는 증상에까지 이른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출산 후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학회 통계에 따르면 출산 후 85%나 되는 여성은 일시적인 우울감을 경험한다. 불안, 짜증을 비롯한 우울감이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는 산후우울증이 대부분 산후 4주경 발병한다고 본다. 하지만 출산 이후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몇 개월 안에 호전되는 경우도 있지만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증상이 악화돼 1년 넘게 지속될 수 있다.
실제로 전체 산모의 10~20%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을 겪고, 0.1~0.2%는 심각한 산후 정신병을 겪으며 입원과 약물치료 등이 필요한 단계까지 이른다.
의학계에서도 산후우울증 원인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그만큼 다양한 신체적 요인과 정서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는 뇌 신경전달 물질 불균형 또는 급격한 호르몬 변화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신체 변화로 인한 불안감 또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양육으로 인한 피로, 스트레스, 생활 방식 변화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영 또한 경력 단절로 인한 과거 자신에 대한 그리움, 시댁과의 갈등, 육아를 해야만 하는 환경적 요인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산후우울증은 피로와 무기력, 짜증, 의욕 상실 등으로 시작될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또한 증상이다. 기억과 집중력이 흐려지며 논리적 사고가 어려운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가벼우면 우울감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증상이 악화되면 수년까지 지속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이에 의료 기관 도움을 받아 정신적, 호르몬 수치 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지영은 결국 자신 상황을 인지하고, 치료에 임하게 된다. 산후우울증을 겪는다면 여성 스스로와 주변 가족이 상황을 파악하고 적극적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을 가족과 사회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을 홀로 내몰지 않는 사회적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