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 50주년을 맞았다. 처음 섬유로 시작한 주력 산업이 브라운관, TV, 휴대폰,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로 재편되면서 1999년에는 전국 최초로 1개 산업단지에서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고, 2007년엔 35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당시 해외 정부기관과 산업단체들이 기적의 성장을 이룬 50년을 벤치마킹하려고 구미산단을 잇달아 방문했다.
돌이켜보면 새벽종 소리를 들으며 '하면 된다'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땀 흘린 덕택이었다. 잔업과 특근은 근로자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 여겼고, 선진국 기업들이 주말에 쉰다는 것을 부러워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시절이었다.
또 선진국과 세계 일등 제품을 부지런히 좇아 가며 품질과 생산성을 측정하고 분석하고 개선시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조공장은 물론 식당에서도 분임조 활동으로 전국대회 금상을 받기도 했다. 주요 산단 근로자들은 야간 고등학교와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못한 학업의 꿈도 이루고, 스스로 실력도 쌓았다.
그 산단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구미산단은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의 해외 공장 이전 및 수도권 이탈, 최저 시급과 주52시간 정책에 따른 인건비 상승, 최근의 미-중 무역전쟁 여파 등으로 최저 가동률과 급격한 일자리 감소를 겪고 있다. 종업원 50인 미만 사업장 가동률은 지난 3월 34.8%까지 떨어졌다.
만들 물건이 없고 팔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그동안 대기업 하청만 해 오다가 이제는 신사업을 발굴하고 신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남다른 아이디어를 낼 인재도 없고 재고 부담을 안고 시제품 만들 자금도 부족하다. 국가산단의 위기임에 틀림없다.
인류사와 문명 연구 세계 권위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개인과 국가의 위기와 대처 방법을 다룬 자신의 저서 '대변동'에서 첫째 우리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둘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 수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강한 기업, 더 강한 산단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문라이트서클'이란 게 있다고 한다. 직원들이 퇴근해도 집으로 가지 않고 삼삼오오 달빛 아래 차고나 작업장에 모여서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애플도, 페이스북도 그렇게 태어난 기업들이다.
국가산단에는 여러 혁신 지원 기관이 있으며, 시제품 제작이나 창업 지원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과 자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허름한 차고나 작업장보다 훨씬 뛰어난 환경이다. 지원 기관들은 창업지원 시설을 자유롭게 심야 개방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문라이트서클 활동비를 지원하고, 기업들은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제공한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50세까지 구미시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자연 감소 외에도 수도권 유출이 주요 요인이다. 특히 20대가 47.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60세 이상 인구는 늘고 있어 앞으로 일자리 대책의 큰 화두가 될 것이다.
경험 많은 은퇴자들을 멘토, 일자리 찾아 상경하려는 청년들을 멘티로 연결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일찍 퇴근해서 길어지는 여유 시간에 우리도 내일의 유니콘 기업을 꿈꾸며 저녁이 있는 산단을 만들면 어떨까.
김사홍 QM&E 비즈니스닥터센터장(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기업성장지원단 전문위원) sahong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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