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타이거 우즈….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성공의 비결이나 인생을 회고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돈보다도 하고 싶은 것, 자꾸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 등 저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이 문구 하나로 귀결된다. 자기계발 서적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최우선에 둬야 할 것, 바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글귀를 읽고 많은 국민들은 공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기자도 그렇다. 인생이모작을 슬슬 고민해야 할 시점이지만 기자 외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이야기에 감명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큰 난제를 해결한 사람이다. 40년 이상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 원인 중 하나는 획일화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직업은 판·검사, 의사, 회사원, 교사만 있는 줄 알고 있던 어린 시절에 품은 장래 희망 역시 그 틀에 머물렀다.
학교 현장은 많이 바뀌었다.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제를 통해 진로 탐색을 하면서 본인의 적성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교학점제 연구·선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은 물론 심화 과목까지 접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간다.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 이론만 배운다고 해도 적성이 맞는 과목은 귀신같이 알아낸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OECD 평균(7.04)에는 못 미치지만 PISA 2015에서는 6.36이던 수치가 PISA 2018에서는 6.52로 높아졌다. 국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만족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학기제를 비롯해 다양한 경험을 한 결과일 것이다.
이것이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의미이다.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또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을 해볼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꿈과 적성을 찾아가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목표다.
고교학점제 연구 학교에서 만난 한 학생은 고2 때 프로그래밍 수업을 배우면서 블록체인 전문가를 꿈꿨다고 했다. 학생은 컴퓨터 언어 공부를 하기 전에는 흐릿한 꿈조차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고 외치는데 그 성공을 좇아 가기 위해 획일적인 교육을 권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계획의 하나로 고교학점제를 내세웠다.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 2023년에는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무리였다. 고교학점제를 위한 다양한 전공의 교사도, 교재도, 운영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몇 년만에 체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지난해 정부는 고교학점제 도입 시점을 2025년으로 늦추고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연구학교, 선도학교를 지정해 지원했다. 내년부터는 마이스터고에서부터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 같지만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고교학점제를 시범으로나마 해본 학교는 이구동성으로 교사와 강사 부족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과목을 위해서는 다양한 전공의 교사가 있어야 한다. 미래 교육에서는 교사가 가르치는 '인스트럭터'가 아니라 필요한 것은 찾아주는 '코디네이터'로 전환된다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교사·강사 양성 예산에는 인색하다. 한쪽에서는 고교학점제를 외치면서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다른 측에서는 교사 수를 줄여야 한다고 야단이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교사 수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 변화와 교육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숫자로서의 잣대는 피해야 한다. 핵심 국정 과제로 세워 놓고 허송세월한 2년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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