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세계경영 선구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0일 아주대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수원=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0일 아주대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수원=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했으며,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세계경영' 선구자로 꼽히는 고인은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국내 2위 그룹을 일군 1세대 기업인이다.

1936년생인 김 전 회장은 만 30세이던 1967년에 대우실업을 창업하고, 수출 중심으로 회사를 빠르게 키우면서 '대우신화'를 써 나갔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 기업을 인수해 단기간에 경영 정상화를 이루면서 중화학산업화도 선도했다.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했다. 그 결과 대우는 1990년대에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에는 대우 수출액이 186억달러를 기록, 한국 총 수출액의 14%를 차지했다. 당시 대우는 자산 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였다.

기업인으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김 전 회장은 1983년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받았다.

김 전 회장은 해외 진출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1989년에 출간한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했다.

1995년에는 “앞으로 20년 후면 틀림없이 세계 경제가 지역경제화될 것”이라면서 “그러면 우리도 그 안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한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20년 뒤에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무역장벽이 높을 것”이라면서 “지금부터 그 권역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우신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지 못했다.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이 해체됐다.

경영인으로서 명성에도 타격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으로 감형됐다.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후 김 전 회장은 과거 자신이 시장을 개척한 베트남에 주로 머물면서 동남아 인재 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프로그램에 매진해 왔다. 지난해 8월 베트남 하노이 소재 GYBM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나빠졌다. 이후 지난해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 장기 입원에 들어갔다.

재계의 큰 별인 김 전 회장 별세에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논평을 내고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영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성공 주역이었다”면서 “대한민국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전경련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씀처럼 세계를 누비며 한국을 알린 노력으로 우리나라 경제 영토가 한층 더 넓어질 수 있었다”면서 “김 전 회장이 일생을 통해 보여 준 창조적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침체된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고인의 뜻을 새겼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큰아들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작은아들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딸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