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라이더스코프(Kaleidoscope).
낯선 용어지만 실상 우리 모두 익숙한 물건이다. 길고 네모난 거울 조각 몇 장을 이어서 통처럼 만든 것이다. 여기에 형형색색 조각을 넣으면 완성이다.
이제 한쪽 끝에 구멍을 내어 들여다보자. 유리통 속 파편은 끝없이 반복되는 화려한 대칭 문양이 되어 나타난다. 한 번 흔들어서 다시 보면 전혀 다른 문양이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가 만든 이것은 '만화경'이라 한다.
많은 기업이 혁신을 생각한다.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 그러나 성과도 감흥도 예전 같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요즘 같이 메마른 경영이론 앞에서 혁신조차 영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일까.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첫째는 정작 문제의 원인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코카콜라가 파워에이드를 내놓으면서 게토레이는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었다. 더 화려한 색과 참신한 맛을 내는 게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저칼로리나 무가당까지 내놓았지만 매출은 나아지지 않는다. 정작 맛을 바꾸는 대신 운동 직전에 섭취할 에너지바와 젤리, 직후에 회복을 위한 단백질 셰이크를 내놓고서야 문제는 가시기 시작했다. 게토레이란 음료수를 기능 제품 묶음으로 다시 창안한 셈이었다.
둘째는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무감각한 데 있다. 오래된 가치 방정식을 적용하기 일쑤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기 급급하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 강자가 된 데는 검색엔진 덕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껏 없던 가치 방정식을 세우고 거기에 참여할 새 파트너를 찾은 데 있었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내 리조트에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대신 여행객이 좋아할 만한 파트너를 찾는 데서 해결책을 찾았다.
셋째는 지속 가능한 변신이다. 많은 기업은 인수합병(M&A)으로 기업 모습을 바꾸려 했다. 이케아는 조금 달랐다. 경쟁력은 디자인과 품질이라고 봤다. 첫째는 좋은 원목이었고, 그다음은 고품질 부재를 만드는 파트너 찾기였다. 마지막은 디자인 혁신이었다. 소매가구 시장을 라이프스타일 꾸미기 시장으로 바꿨고, 여전히 강자로 남았다.
로자베스 칸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많은 기업은 실상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도 주어진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최적 아닌 해답에 멈춘다. 다시 말해서 전역(全域) 최적이 아니라 지금 상황 언저리에서 찾는 국소(局所) 최적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칸터는 IBM을 말하면서 제품 대신 그 제품으로 만들어 낼 솔루션에 초점을 바꿨을 때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말한다. 거기다 이것은 수만명의 직원과 공급 업체를 설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제안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구조조정에 동의했겠는가.
우리는 만화경에 나타난 모습을 볼 때 한 가지 독특한 방법을 쓴다. 하나하나 세부 모양에 연연하기보다 전체 이미지와 패턴에 집중한다. 고전 서사 가운데 환상이나 꿈을 묘사한 문학에도 이 방식이 적용된다. 어떤 특정 상징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 서사가 전달하려는 목적에 주목한다.
칸터는 혁신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혁신은 상식을 흔들어 새 패턴을 만들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다. 칸터는 이를 '만화경 사고'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창조적 파괴'란 용어도 결국 만화경과 무척 닮은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