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말이다. 중2병에서 헤어 나올 무렵에서야 인터넷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개인 휴대폰을 가진 것도 이 무렵이다. 프리첼, 하늘사랑에서 채팅을 나눴다. 다모임에서 재회한 첫사랑과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녹색 액정이 박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뭐가 좋은지 자글자글한 저해상도 액정을 보면서 희희덕거렸다. 숫자판에 각인된 글자가 다 지워질 때까지 쓰고 또 썼다. 이렇게 엊그제처럼 선명한 기억인데 벌써 20년이 흐른 이야기다. 그녀는 지금 다둥이 어머니로 보육 시설 입소 우대를 받고 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통신 기술 발전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분 사람이 어느 곳에서나 서로에게 연락을 할 수 있게 됐다.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면 전문가가 실시간으로 답변한다. 2000년에는 모르는 건 넷스케이프를 켜서 엠파스에서 검색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 답변을 얻었다.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가 시작된 건 온 나라가 빨간색으로 뒤덮인 후폭풍이 아직 가시지 않을 때였다. 아직 전지현이 날개 모자를 쓰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불과 20년 만에 네이버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를 엮으면서 변한 것이다.
나 때는 검은색 개가 뛰어다니던 라이코스 광고도 있었다. 얼마 전 후배에게 '이리와 라이코스'를 외쳤다가 '삐라'를 주우러 다니던 세대냐는 질문을 받았다. '야후 같은 거 있던 시절에 살던 사람 아니야?'라는 조롱도 들었다. 그 시절 야후는 진짜로 있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렸던 테헤란로에 제법 큰 야후 사무실이 있었다. 그리고 제법 큰 포털로 정보 통로 역할을 했다. 야후 꾸러기로 어린이들 친구가 되기도 했다. 기술 발전이 워낙 빠르고 삶을 변화시키는 속도가 빨라 체감이 안 되는 거지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매우 당연한 채팅이 마냥 신기했다. 네트워크상에서 엮인 인연이 현실 인연으로 발달했다. 현실 인연은 네트워크상에서 더 공고하게 굳어졌다.
버디버디가 그랬고 세이클럽이 그랬다. 버디버디는 하두리와 함께 시대 유행을 이끌어갔다. 30·40세대 중 웹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대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조명발 받는다고 인터넷 익스플로러 하얀 오류 창을 띄었다. PC방 특유 음침한 분위기에 하얀 화면이 번쩍였다. 지금은 PC방이 여가 공간이지만 그때는 정말로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 PC방을 가기도 했다.
웹캠은 사진과 영상채팅 시대를 열었다. 텍스트 감수성에 의존했던 PC통신 '벙개'와 확실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웹캠과 휴대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동영상 시대도 열렸다. 이용자손수제작물(UCC)이 유행했다. 누구나 영상 한 편으로 스타가 될 수 있었다. 국내에는 유튜브보다 먼저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시작한 세계 최초 무료 동영상 포털 판도라TV가 있었고 엠군이 있었다.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소셜네트워크(SNS)도 2000년대 초반 산물이다. 그 시절 태동해 우리 삶을 바꿔놨다. 싸이월드는 '1촌 파도타기'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싸이월드를 꾸미기 위한 음악, 캐릭터, 벽지 등 디지털 에셋 개념이 삶을 파고들었다. 내 커플 미니미는 아직도 그냥 커플 상태로 남겨져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는 다둥이 어머니가 됐다.
이미 세상 모든 것과 연결돼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은 우리의 삶은 '아이폰' 등장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동안 사용하던 모바일 인터넷과 달랐다. '네이트' '매직앤'과는 다른 진짜 웹 브라우징을 할 수 있었다. 공간과 시간에 제약이 있던 PC 메신저와 다르게 온종일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할 수 있게 됐다.
CD플레이어, MD플레이어, MP3플레이어가 주머니에서 사라졌고 똑딱이 카메라가 가방에서 없어졌다. 모든 멀티미디어 기능이 손바닥으로 올라갔다. 스마트폰 덕분에 콘텐츠 소비가 많아지고 익숙해졌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 태동했다.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리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검색도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옮겨갔다. 광고 시장도 유튜브로 이동했다.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는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를 열었다.
삶과 밀착된 애플리케이션(앱) 확산으로 삶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모바일 앱 '직방' '다방'을 이용하면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집 내부를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과 접목해 임대, 중개, 공간 공유, 인테리어 등 부동산 다양한 분야에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롭테크 서비스가 일상에 녹아들었다.
요즘엔 퇴근하고 나서 '런드리고' 스마트 빨래 수거함에 집어넣는다. 앱으로 수거 버튼만 누르면 하루 만에 세탁과 건조를 완료해 다시 문 앞까지 배송해준다. 기존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기 위해 시간을 비울 필요가 없다. 세탁물을 찾기 위해 퇴근하고 부리나케 세탁소로 뛰어갈 필요가 없다. 비대면이라 동네 오지랖을 책임지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와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점도 장점이다.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는 최근에는 발전한 기술 수혜를 입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중고차 매물을 확인한다. 사고 이력이 있는지 주인이 몇 명이나 바뀌었는지 한 번에 확인한다. 중고차 집단단지에 찾아가 협박당하고 허위매물에 속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차량 전문가 대동하고 힘 좀 쓴다는 친구 데리고 중고차 단지에 가지 않아도 안심이다.
'케이카' 같은 O2O 업체도 생겼다. 기존 중고차 회사에서 단독으로 떨어져 나온 사례다. 직영몰 홈페이지에서 모바일 중고차를 구매하면 차량을 집 앞까지 배송해 준다. 타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도 가능한 '3일 책임 환불제' 서비스도 제공한다.
스마트폰 챗봇을 통해 음식점에 도착하기 전에 주문까지 한다. 앱을 사용하면 예약은 물론이고 줄을 설 수도 있다. '오빠는 나랑 데이트할 때 준비 안 해오나 봐?'라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오빠'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앱을 켜서 이것저것 준비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정보통신기술님.
비단 정보통신 발전뿐만 아니다. 운송 수단 발달로 지역 간 이동시간이 줄어들어 세계 어느 곳이라도 하루 안에 갈 수 있게 됐다. 친구들과 낭만 삼아 보름씩 걸어갔던 광안리 해수욕장은 이제 서울역에서 3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됐다.
각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을 하루 안에도 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한겨울에 딸기를 찾아도 배달 대행사가 앱으로 주문을 받아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 내 친구처럼 입덧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논산 딸기를 사러 논산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기껏 다녀왔더니 늦었다는 잔소리를 들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각 가정에서도 기술 발전에 힘입어 극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영화를 아주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로 즐길 수 있게 됐다. 가전제품은 점차 사용자 편의에 맞게 만들어지고 있다.
브라운관 TV는 스마트폰 액정으로 들어갔다. DMB는 OTT로 대체됐다. 넷플릭스, 디즈니, HBO 등 글로벌 시장에서 콘텐츠 전쟁이 발생했다. 이용자는 언제 어디서나 골라볼 수 있게 됐다. 리모컨 싸움도 사라졌다.
바이오·생명 과학 발전으로 질병 진단이 빨라지고 치료법이 개선이 돼 인간 수명도 늘어났다. 많은 불편한 장애들이 극복돼가고 있다. 도시마다 높은 아파트, 빌딩이 건축 공법과 기술 발전에 힘입어 높게 빠른 시간에 올라가고 있다. 실시간 렌더링 등 기술이 도입되며 이종 산업 간 협업이 늘어가고 있다.
초저지연, 초연결로 대표되는 5G로 연결되는 요즘에 와서는 클라우딩 컴퓨터로 막대한 데이터가 오가는 게임까지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언제 어디서나 무얼 하든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정보통신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물론 기술 발전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의 시덥지 않은 잡담에도 답해줘야 한다. 24시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술 마시다 걸려오는 영상통화에 염라대왕과 면담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진정 혼합현실(MR)이다. 영상통화 한 통으로 발설지옥 염라대왕까지 만나주게 하다니, 기술 발전은 확실히 삶을 바꿨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주인공 '아이캔'은 아버지를 찾아 우주로 떠났다. 2020년 난 우주에 못 간다. 새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정거장 ISS를 관광 등 민간 상업 용도로 개방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내 월급으로는 꿈도 못 꾼다.
하지만 발전한 기술로 또 다른, 매일매일 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사를 쓰기 시작할 때 주문한 쿠팡 로켓배송은 벌써 도착했다.
앞으로 20년, 지금 최신 기술을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추억하는 세상이 또 올 거다. 어떤 기술이 또 삶을 바꿀지, 아이캔 모험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