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상 책은 해가 바뀌는 겨울에 가장 많이 팔린다. 이는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낫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수단으로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긍정 상태로 바꾼다고 우리는 믿는 것일까?
책에 대한 국어사전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일정한 목적·내용·체제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등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 이 정의에는 책의 세 가지 요소가 표현돼 있다. 형식(일정한 목적·내용·체제), 내용(사상·감정·지식), 매체(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적거나 인쇄해 묶어 놓은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전자책'은 책일 수 없다. 그런데 책이라는 한자 冊은 '죽간'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다. 죽간은 대나무를 길게 자른 여러 개의 패를 묶은 것으로, '책(冊)' 이라는 문자가 생길 당시의 책은 종이 뭉치가 아니라 대나무였음을 의미한다. 실제 진나라 시황제의 분서갱유 책은 죽간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책의 매체는 시대 흐름과 기술 발달에 따라 변해 왔다. 가변 요소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책의 '내용'은 과거나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상, 감정, 지식 등'을 '일정한 목적·내용·체제에 맞추어' 제작하기만 한다면 그 매체가 종이이든 전자책 표준인 이펍(epub)이든, 동영상이든 음성이든 그것은 곧 책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책을 소비하는 것일까? 책에 담겨 있는 사상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거나 책에 표현된 감정으로 위로와 치유를 받거나 책 속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눈을 감고 무작위로 하나의 책을 택하기만 해도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가능할까?
책의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어야만 그 책이 좋은 지 좋지 않은 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에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 이전에 읽은 타인의 평가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연관된 것이 무엇인지 사전에 인지하는 것이다. 대나무 시절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플랫폼이 선험자들의 평가, 개개인의 소비 패턴에 근거한 인공지능(AI) 추천, 월정액으로 이것저것 둘러보는 데 부담 없는 구독 모델을 제공해 이를 가능하게 해 준다. 디지털 콘텐츠 구독 모델 등장으로 결제 단계가 생략됐고, 다운로드 방식이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있으며, 콘텐츠 분량도 짧아지면서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시간이 극단으로 단축되었다. 혹자는 이런 것은 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는 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나에게 좋은 '사상, 감정, 지식'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그 콘텐츠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뿐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 구독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기술 못지않게 '내용' 품질에 대한 과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정보가 넘치고, 정보에 접근하는 편의와 빈도가 극대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정보의 질을 판단하기는 어려워졌다. 가짜 뉴스가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최초 출처에 집착하게 된다. 믿고 보는 출처와 믿고 거르는 출처를 내 마음속에 저장해서 선별하게 된다. 그런데 그 분별의 수고까지 누군가 대신해 준다면 어떨까? 이미 충분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된 콘텐츠를 선별해 주거나 믿을 만한 소스를 확보해 준다면 선택과 고민의 시간까지 단축되는 것이니 '더 나은 내'가 되는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인석 리디주식회사 셀렉트사업본부장 isl@ri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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