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섬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병원에 한 번 가려면 배를 타고 대천항으로 나와 다시 이동해야 했다. 할머니가 병원에 가시는 날이면 보호자로 가야 할 사람이 일정을 빼고 꼬박 하루를 진료에 매달려야 했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집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어느 집이나 어르신이 아프면 거치는 과정이다. 인터넷과 네트워크가 발전하지 않은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왜 우리는 초연결 사회인 지금도 도시를 오가며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을까.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갖췄다. 그런데 이 둘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묶여 있다. 원격의료는 의료 정보와 이미지 등을 기반으로 시행하는 서비스다. 스마트폰으로 안방에서 질병을 상담하고 진단과 사후 관리를 받는다.
과연 누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것일까. 격오지는 물론 몸이 불편해서 이동이 어려운 환자에게 더욱 편한 의료 서비스는 허락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섬이 아닌 도시에 살아도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 오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이 같은 인구는 더욱 늘어난다.
일부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해 오진하거나 정보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돼 동네 의원이 몰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환자가 심각한 질병을 원격으로 진단 받으려 할까. 원격의료는 일부 한정된 질환에 특화될 공산이 크다. 이미 중국과 일본은 원격의료를 시행했다. 중국은 1억명이 넘는 인구가 원격의료 혜택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나라별로 의료 서비스가 다르지만 원격의료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원격진료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인터넷은행을 도입할 때 기존 금융권의 반대가 거셌다. 비대면 금융거래는 보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반대 논리를 내세웠다. 인터넷은행이 도입된 후 금융 시장은 빠르게 디지털화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은행이 사라지거나 망하지는 않았다. 인터넷은행은 기존 금융권이 제기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한편 혁신 서비스로 고객의 맘을 사로잡았다. 기존 금융권도 인터넷은행이 도입한 새로운 보안 기술과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며 고객 이탈을 막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기존 금융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현실이 20년째 지속되고 있다. 원격진료는 이제 의료계가 나서서 시대의 큰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격진료 도입을 계속 늦추면 의료계도 함께 퇴보할 것이다. 전 산업계에 디지털 전환 물결이 거세다. 기존의 일하던 방식을 디지털화로 전환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고부가 가치를 올리고 있다. 의료계도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산업은 모두 퇴보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뒤처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원격의료를 의료 서비스 민주화로 생각하면 어떨까. 돈도 뒷배경도 없고 보호자가 돼 줄 자식이 없는 사람도 좀 더 편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대면 진료를 한 후 사후 관리는 비대면으로 조금 더 편리하게 받는 것부터 시작하자. 밥그릇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일이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