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한교민 반대하는 님비' 문제 있어

[기고]'우한교민 반대하는 님비' 문제 있어

방탄소년단이 2017년 발표한 곡 '봄날'의 뮤직비디오는 아이돌 뮤직비디오답지 않게 철학적인 내용이 상당히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오멜라스 호텔' 시퀀스다.

싸리 눈이 흩날리는 겨울밤, 오멜라스(Omelas)라는 이름의 호텔 앞에 RM, 슈가, 제이홉 등 세 명의 멤버가 서 있다. 방이 없어(No vacancy) 호텔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호텔 안에서는 폭죽을 터뜨리고 케이크를 집어던지며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밖에서 사람이 떨고 있으면 들여보내줄 법도 한데, 내부자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외부자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방탄소년단은 이 장면을 통해 묻는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고.

이 뮤직비디오는 미국작가 어슐러 르 권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부유하고 평화로운 마을인 오멜라스는 마을의 이미지와 품격을 위해 한두 평 남짓한 지하실에 장애 아동을 가둔다. 마을주민 모두가 연일 벌어지는 축제를 즐기고 고상한 삶을 누릴 때 그 아이는 배설물조차 처리되지 않는 지하실에서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 그릇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아이를 지하실에서 꺼내는 것은 마을의 금기다. 그랬다간 동네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에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실망한 청년들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요즘 한국 사회의 모습도 오멜라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둘러싼 공포가 일부 국민의 인격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한에서 고립된 교민 700여명을 전세기로 데려오기로 하자 여론이 떠들썩해졌다. 그들을 천안의 정부시설 두 곳에 격리하기로 한 게 알려지자 천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급기야 정부는 아산·진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지역 주민은 트랙터로 길을 막으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정부는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급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일말의 양심과 인격, 배려를 모두 내팽개쳤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은 받지 않겠다는 식당과 택시가 나타났다.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은 지난 28일 중국인 밀집지역에 대한 배달금지 또는 위험수당 지급을 요청했다. 중국인 밀집지역에 배달 가는 것이 정말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면 위험수당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노동자를 보호하는 척하면서 조합원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중국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뚝 끊겼다고 한다. 거기에 사회적 멸시까지 더해지고 있다.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인은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해 107만여 명에 달한다(2019년 8월 기준). 중국인 자체가 문제라면 우리나라는 벌써 신종 코로나로 큰 사달이 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벌써부터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시켜야 한다”며 '코로나 신드롬'에 편승하고 있다. 주장의 논리는 이해하지만 이런 식의 막연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국제관계에도, 우리 국민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잘 모르는 대상, 미지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공포를 이기게 하는 건 바로 이성이다. 이것은 문명국의 필수요건이기도 하다. 비문명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나라에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종종 비이성과 광기가 고개를 든다. 중세유럽의 마녀사냥이 그랬고, 제국주의 일본의 관동 조선인 대학살이 그랬다. 중국인에 대한 막연한 혐오도 일종의 광기다.

그 시절의 사람이 지금의 사람과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합리적 이성과 인격, 염치, 양심,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들이 쌓이며 문명사회를 이룩했을 뿐이다. 미개한 시절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면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leedongsoo@policrew.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