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슈퍼볼과 듀랑고

[기자수첩]슈퍼볼과 듀랑고

슈퍼볼53이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21년 동안 유력 수석코치로 미국프로풋볼(NFL)을 누볐지만 우승 경력이 없던 앤디 리드는 드디어 빈스롬바디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2020년 2월 2일(현지시간) 거둔 222번째 승리였다.

패트릭 마홈스, 타이릭 힐과 리그 최고 수준의 오펜시브 라인 등 훌륭한 자원이 우승을 만들었다. 가장 빛나는 건 리드의 전술이었다. 20년 동안 시간 관리가 부족했다는 지적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지켰다. 창조적인 공격 전술과 엄청난 공격 옵션을 준비했다.

웨스트코스트 오펜스를 기반으로 대학 미국축구의 와이드 스프레드 오펜스를 누구보다 적극 받아들여 프로 미식축구 플레이에 접목시켰다. 이러한 창의력으로 평생 보지 못한 공격 플레이를 보였다. 상대방 수비를 당황시키는 장면을 여러 번 만들었다.

만약 리드가 대세만을 따라 부화뇌동했다면 우승이 가능했으리라 보지 않는다. 카림 헌트, 에릭 베리, 디 포드 같은 주요 옵션을 잃고도 전진했다. 자신들이 잘하는 걸 유지·보수·발전시켰다.

리드가 부인과 함께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기자는 넥슨의 '야생의 땅: 듀랑고'를 떠올렸다. 듀랑고는 창발성과 기술력, 커뮤니티성이 뛰어났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2년을 버티지 못했다. 야심 찬 준비와 새로운 시도에 쏟아진 찬사를 생각하면 초라한 마무리였다.

듀랑고는 가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선물을 남겼다. PC등급 분류를 받아서 개인 섬을 보존할 수 있게 했다.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마음껏 꾸밀 수 있는 나만의 즐거운 놀이터를 선물하고 갔다.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면 데이터 조각은 사라진다. 그러나 '다름'을 표방한 듀랑고는 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색을 지키며 다름을 선사하고 갔다.

한국 게임 산업은 경험 많은 개발자, 수준 높은 이용자, 세계 4위 시장 등 국가 규모에 비해 좋은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 잘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한계와 파급력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업계도 혁신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바야흐로 변혁의 시대다. 클라우드게임, 크로스플레이 등 플레이 경험이 크게 바뀌고 있다. 듀랑고같이 색을 지키는 용감한 시도가 축적된다면 PC온라인게임 시절에 떨친 위용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반 기술에서 위에 무언가를 추가하고 꼬아서 창조하는 건 우리 업계가 가장 잘하는 것 아닌가.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