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모래 놀이터'가 필요없는 그날까지

[기고]'모래 놀이터'가 필요없는 그날까지

J 대표님. 잘 지내십니까. 창업 3년차를 맞는 소회가 어떠한지요. 멀지않아 찾아올 봄처럼 대표님의 사업에도 활기가 넘치고 번창하길 바랍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대표님이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계기였습니다. 대표님도 잘 알고 있다시피 규제 샌드박스는 신제품이나 신사업에 대한 규제 여부를 확인해 주고, 모호하거나 불합리한 규제가 있으면 안전 조치 확보를 전제로 실증특례나 임시 허가를 내 주는 제도입니다. 즉 '다칠 걱정 없이 마음껏 혁신해 보라'며 만든, 기업을 위한 모래 놀이터지요. KIAT는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 사무국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표님의 고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표님은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약용 버섯을 대량으로 기르는 버섯 배지를 재배하고, 재배하고 난 폐배지는 다시 곤충 사료와 유기농 비료로 재활용하는 친환경 기술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연간 수백억원에 이르는 커피 찌꺼기 처리 비용을 대폭 줄이고, 자원 순환에도 기여하는 모델이어서 KIAT 사무국에서도 사업화에 건 기대가 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나 유관 기관은 폐기물관리법상 커피 찌꺼기 재활용 사업을 허가하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온 태도를 보였지요.

결국 실증특례 신청 후 몇 개월 만에 관계 부처의 법령 해석을 전향으로 끌어내면서 커피 찌꺼기 활용 사업 길이 활짝 열리게 됐으니 비록 늦긴 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후 유관 기관에 제출해야 할 서류 작성과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 등 사업 개시에 필요한 후속 절차까지 지원한 바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가 큰 힘이 됐다며 대표님께서 감사를 표해 왔을 때 사실 저야말로 정말 고마웠습니다.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스타트업에 날개를 달아 준 보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히 법령 개정이 아니라 소관 법령을 적극 해석하는 적극행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시장에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다는 사실에 말로 다할 수 없이 뿌듯했답니다. 실제로 규제 샌드박스의 신속확인과 적극행정 조치는 간단한 법률 자문 하나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규제가 있는지 확인받기 위해 KIAT에 신청한 기업이 지난해에만 97개사에 이르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규제 샌드박스는 출범된 지 이제 겨우 2년째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더 많이 활용하도록 체감도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여전히 기업 입장에서는 신청 준비에 필요한 서류 종류가 많고 신청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해외와는 달리 분야가 산업융합, 정보통신기술, 금융, 지역혁신 등 4개로 나뉘어 있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안건 심의에 걸리는 시간도 가능한 한 줄여 주길 원할 것입니다.

KIAT는 접수된 과제 내용이 기존에 특례를 받은 안건과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면 사전 심의를 서면으로 대체 또는 생략하는 등 승인 처리 기간을 단축할 방침입니다. 후속 조치도 중요한 만큼 특례를 받은 중소기업이 최대한 신속하게 사업을 개시하도록 상시 모니터링 및 일대일 상담을 지원하고, 과제별 담당자 실명제를 도입해 사업별 사후관리 체계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모순이지만 규제 샌드박스는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개선하고 혁신해야 할 규제가 더 이상 없을 때까지 KIAT가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래서 궁극으로는 기업에 안전을 보장해 주는 모래 놀이터가 필요 없게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님의 건승을 기원하며 앞으로 규제 샌드박스 수혜 기업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ycseok@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