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상장회사 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이 왔지만, '봄이 오되 봄 같지 않다'라는 말처럼 코로나19 영향으로 정상 개최 여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내이사 선임 등 주요 안건을 상정하고 주총에 대비하고 있지만 재무제표, 감사보고서, 사업보고서 등 사전 준비작업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유명무실했던 전자투표제가 주총 '깜짝 스타'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요 기업, 주총 준비 '분주'
삼성전자는 3월 18일 주총을 열고 재무제표 승인, 사내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주총에서는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과 최윤호 경영지원실장(CFO)을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사내이사 두 명이 늘면 삼성전자 이사회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5대 6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상훈 사장이 물러난 공백을 메우며 11명의 이사회 체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LG그룹 주요 계열사가 아직 주총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가운데 LG화학은 다음 달 20일 주총을 개최하고 권영수 ㈜LG 부회장을 등기이사(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한다. 전자 업계에서는 권 부회장이 주총 직후 열리는 LG화학 이사회에서 의장으로 선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장에 선임되면 권 부회장은 LG유플러스와 LG전자, LG디스플레이에 이어 LG그룹 4개 주력계열사 의장을 맡게 된다.
현대자동차는 3월 19일 주총을 열고 사외이사, 사내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등의 안건을 처리한다. 현대차는 지난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정몽구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주목 받았다. 정 회장 사내이사 임기는 다음 달 16일 만료된다. 주총 직후 열리는 이사회에서 누가 이사회 의장에 선임될지 관심사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곧바로 이사회 의장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전동화 차량 충전사업, 모빌리티 등 기타 이동수단 등을 정관에 포함할 예정이다.
SK그룹은 내달 20일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주요계열사 주주총회에 돌입한다. SK하이닉스는 내달 20일 주총에서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새로운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최종원 이사 임기만료에 따른 것으로, 이사회 내 법률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SK텔레콤은 내달 26일 주총을 열고, 김용한 전 연세대 총장과 김준모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 전문가를 영입, 이사회 역량을 강화한다. SK이노베이션도 같은 날 주총을 개최할 예정으로, 신규 사외이사 후보 없이 기존 사외이사를 재선임한다. SK주식회사 주총은 그룹차원 주요계열사 주총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등 상장회사에 미치는 입김이 세진 기관투자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5% 룰'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적극적 주주 활동에 나서려면 지분 보유 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으로 분류돼 지분 변동 사항을 상세히 밝혀야 했다. 그러나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분 보유 목적에 '일반투자목적'이 신설됐다. 지분 변동 사항을 월별로 약식 보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현대차, 대한항공 등 주요 상장사 56곳의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목적'으로 변경하고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예고했다.
◇코로나19 확산 '발등의 불'
금융당국의 발 빠른 대처로 주총 관련 코로나19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당국은 26일 주총 관련 재무제표, 감사보고서, 사업보고서 작성과 기한 내 제출 의무를 완화하는 내용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기주주총회 안전 개최 지원 방안을 내놨다.
중국 소재 회사나 국내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에 위치한 회사를 구제하는 방안도 내놨다. 주총 6주 전에 제출해야 하는 재무제표, 1주 전까지 제출해야 하는 감사보고서에 대해 코로나19 영향이 인정되면 제재를 면해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의결정족수 확보 등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감사 선임을 해야 하는 기업은 고민이 깊다.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하려면 발행 주식 25%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과거와 달리 대주주 의결만으로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감사 선임 안건에 대해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머지 22%는 일반주주들로부터 확보해야 한다. 코스닥 상장사 1298곳 중 41.9%인 544곳이 이번 주총에서 감사, 감사위원을 신규 선임해야 한다. 주총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전체 주주가 투표한 것으로 간주했던 의결권대리행사(섀도보팅) 제도가 2017년 폐지되면서 의결정족수 채우기는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상법상 주총은 무조건 일정한 장소에서 열어야 해 온라인 중계를 할 수도 없다.
주총장에 가지 않고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가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 의결권 중 전자투표를 통한 의결권 행사 비율은 4.94%에 그쳤다. 그러나 의결정족수를 확보해야 하는 기업들이 전자투표를 적극 독려하면서 올해는 어느 해보다 전자투표율이 높아질 전망이다. 주요 기업은 주주총회소집공고에서 전자투표 활용법을 적극 안내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전 계열사가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전체 상장사 2354곳 중 63.1%인 1486곳이 전자투표제를 운용 중이다.
주총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선 주총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지역에만 118개 상장사가 몰렸다. 상법에 따르면 주총은 주주명부 폐쇄일(통상 12월)로부터 3개월 안에 열어야 하며, 이 때문에 주총이 3월 말 열리지만 주주명부를 다시 확정하면 연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12월 말까지 주식을 보유했다가 1월이나 2월에 판 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주총 연기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기업들은 주총장 입구에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하고 발열 의심자는 출입을 제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