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88>기업은 돈이 되는 R&D 정보를 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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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는 1990년대 이래 급증,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성과는 여기에 못 미친다. 기술경쟁력은 세계 최고 대비 80%대에 갇혀 있고,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은 77개(2017년)로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기술개발 부문의 투자는 많이 했지만 팔리는 기술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이 어떤 기술이 돈이 되는지,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R&D를 해 온 탓이다.

실제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지난 2018년 1070개 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R&D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시장 및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 부족'(55%)과 '부실한 기획'(38%)이 꼽혔다. '예산부족(26%)' '인력부족(30%)'보다 R&D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R&D 전략을 세우려면 동종 업계의 빅플레이어 또는 경쟁 기업의 움직임과 세계 시장 변화, 2~3년 후에 떠오를 유망 기술 등 총체에 관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중소기업 처지에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컨설팅 업체의 분석 서비스도 비용이 커서 작은 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간단한 보고서라도 좋으니 기업이 쓸 수 있는 정보를 달라”는 기업의 호소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전체 R&D의 순환 장애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기업은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보유 기술이 사업화가 어렵고 시장성이 낮다며 외면하고, 반면에 대학이나 출연연 입장에서는 기업 기술 수준과 수요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기업의 잠재 수요, 즉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창출된 공공 R&D 성과물이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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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 정보 활용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산기협은 지난해 4만곳의 기업연구소 의견을 모아 2030년까지 우리 경제가 한 단계 스케일업 하기 위한 산업기술 혁신 과제를 제안했다. 기업은 그 가운데 R&D 정보를 통합해서 분석·제공하는 '국가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구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동안 정부 부처와 R&D 관련 기관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구축됐지만 대부분 공급자 중심의 한 방향 서비스 일색이었다. R&D 수요자인 기업의 R&D 수준과 역량 및 연구 분야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개방형 협력 생태계로 발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R&D 수요 정보를 포함한 특허 출원, 기술 거래 추이, 인수합병(M&A) 정보, R&D 투자 정보 등을 빅데이터로 수집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분석해서 플랫폼을 통해 기업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게 됐다.

산기협은 올 하반기에 특허 빅데이터 기반의 기술 및 시장동향 분석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기업이 R&D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는 것이 목표다. 이것을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등과 연계한다면 수요 기업과 공공 연구 성과를 연결하거나 정부 R&D 사업의 방향성 제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기업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급속한 변화에 직면했다. 지금 이 혁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낙오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혁신의 선두에 서 있는 기업의 동향 정보를 재빠르게 입수하고, 기술 발전 흐름을 예측하는 똑똑한 R&D 전략 수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가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등을 통해 쓸 만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기업에 가장 필요한 지원이다.

마창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근부회장 koita@koi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