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은 어렵습니다. 그 자체도 그렇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도 쉽지 않죠. 그러나 R&D는 우리 산업과 미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본지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함께 생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를 통해 복잡한 R&D를 격주로 '알기 쉽게' 풀어 드립니다.
'디자인'은 우리 일상생활 어느 곳에나 스며 있다. 매일 입는 옷부터 수시로 사용하는 전자기기까지, 하물며 길거리 간판 하나하나에도 디자이너 손길이 닿아 있다. 그에 비해 디자이너들의 노고는 숨겨져 있을 때가 많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디자이너는 화려한 주목을 받지만 사실 일상에서의 디자이너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들이 디자인했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이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디자인의 출처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품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디자이너의 힘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디자인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디자인은 또 미래에 역사성을 띠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량 생산을 촉발한 디자인은 '박가분'이다. 박가분은 1920년에 상표등록이 되고 공산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다. 1914년 박승직 포목점에서 박승직 부인 정정숙이 수공으로 제조해서 손님에게 나눠 주던 것에서 유래했다.
박가분이 주목받을 수 있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패키지 디자인이다. 사진처럼 근사하게 디자인해서 인쇄한 라벨을 패키지에 붙여 매력을 끄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차별성 덕분에 박가분은 국내 최초로 대량 생산을 촉발한 디자인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은 금성사에 재직해 있던 디자이너 박용귀다. 그는 한국 최초 라디오 'A-501'(1959년), 최초 텔레비전 'VD191'(1966년) 등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 '최초' 수식어가 붙은 많은 가전제품을 탄생시켰다.
박용귀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을 많이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기업 내 직원으로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국내 최초의 사내 디자이너로 활동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박용귀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가전제품 형태를 연구하고 디자인했다.
삼성전자도 디자인을 통해 혁신을 이룬 사례가 있다. 삼성은 현재 세계 TV 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경쟁 업체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출시된 보르도 TV가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를 강화하게 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디자이너 강윤제가 탄생시킨 보르도 TV는 와인 잔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사각형으로 정형화된 TV 시장에서 차별성을 갖춘 아이템이었다. 기술력이 뒤처지지 않는 상황에서 디자인이라는 날개를 단 덕분에 삼성은 여러 경쟁사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매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근에는 디지털 가전 영역에서 디자인 역할이 더 커졌다. 우리가 사용할 편리하고 아름다운 물건과 도구, 환경을 꾸며 내는 데 디자인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떠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디자인은 일상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물건 대부분에 녹아 있다. 한때 유행하다가 추억이 된 디자인도 있고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지금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는 디자인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모든 제품에는 디자이너의 열정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 주변을 둘러볼 때 제품에 디자이너의 어떠한 생각이 담겨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태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디자인PD lilia@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