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9일 0시를 기점으로 상대 국민에게 발급한 비자 효력을 정지한다.
겉모습은 코로나19 확산을 위한 입국제한 조처지만 무역분쟁·강제징용·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복잡한 외교·경제 현안이 맞물리며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정부는 9일 0시부터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자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한다. 검역절차도 강화한다. 중국본토와 홍콩, 마카오에 이은 네 번째 조치다.
법무부는 8일 설명자료를 내고 “일본 주재 대한민국 모든 공관에서 일본 국민에게 이미 발급한 유효한 사증 효력도 모두 정지된다”며 “외교관 여권과 관용 여권 소지자도 예외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앞서 6일 △일본에 대한 무비자 입국 금지 △기발급 비자 효력 정지 △여행 경보 2단계로 상향 등 조처를 한다고 발표했다.
포문은 일본이 열었다. 우리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맞불'을 놓았다.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시급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하자”고 제안한 지 나흘 뒤인 5일 오후 기습적으로 한국인 입국제한 조처를 발표했다. 9일 0시부터 한국인 입국자에 대한 비자 효력을 정지하는 내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일 코로나19 대응 회의를 열고 한국과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발급됐던 비자 효력을 정지하고 검역소 소장이 지정한 의료시설이나 정부 지정 시설에 2주간 격리한 뒤 입국 허가를 내준다고 발표했다. 9일부터 31일까지 일본에 입국하는 이들에게 적용된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는 6일 국가안정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과학적이고 투명한 방역체계로 세계적 평가를 받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대책으로 국제사회 불신을 받고 있다”며 상응조치를 예고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 여권 고위인사들도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의 입국제한 조처를 방역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외교적 성격'으로 바라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도미타 고지 주한일본대사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로 초치해 “매우 부적절하며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일본의 의도성을 의심한 정부는 당일 밤 일본인 입국제한 조치를 골자로 한 긴급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 수출규제, 지소미아 종료 검토 등으로 대치 중인 한일 양국간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는 평가다. 10일 예정된 한일 수출관리당국 간 국장급 협의(영상회의)도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 정부는 3개월 만에 국장급 협의를 열고 수출규제 문제 해결에 의견을 나누기로 했었다.
정부여당 내 강경파가 주장하는 지소미아 종료 주장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조건으로 지소미아 종료 통보를 유예한 바 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