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사회의 시계가 잠시 멈춘 듯하다. 새 학기 시작도 정부 정책 과제도 줄줄이 순연되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번 사태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대구 지역에 위치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도 연구개발(R&D) 과제 접수와 평가 등 일정을 조정하며 정부의 지역 감염 확산 방지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쁜 소식도 들려 온다. 주요 해외 매스컴에서 우리나라 방역 당국의 정보공개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속도로 진단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진단 내용과 확진자 동선을 실시간 공개, 국민의 협조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우리 방역 당국의 대처를 보면서 재해·재난 대처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과 미국조차도 놀라워하는 눈치다.
투명성과 개방성은 정부 R&D 서비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치다. KEIT는 정부 R&D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이번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 온라인 회의나 비대면 평가 방식을 확대하는 논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평가관리 업무에서 온라인 평가를 적용하는 것은 정부 R&D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대폭 높이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온라인 평가 과정에서 사업계획서 열람으로 말미암아 따르는 보안 문제, 비대면으로 인한 의견 교류 제약 등 일부 애로 사항이 있지만 이는 얼마든지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연구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정과 제도를 경험했다는 연구자 비율이 72.5%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선봉에 있는 융합연구자 대상 설문에서는 정보 공유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76.1%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투명하고 개방된 환경이 제공된다면 연구자가 언제든지 정부 R&D 서비스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정부 R&D도 질 좋은 온라인 서비스 공급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D 기획·평가·관리 과정에서 디지털 과제관리 혁신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부처 간 정보 칸막이를 걷어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와 서비스를 연구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KEIT는 최근 조직을 개편했다. 주된 개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산업기술지식정보단'의 신설이다. 이를 통해 R&D 관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디지털 기반의 평가관리 혁신 체계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우선 기존 대면평가 방식을 온라인 방식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주제가 평가 과제와 유사한 특허나 지원 과제의 성과 정보를 제공해 더 전문성 있는 평가를 지원하고, 나아가 컨설팅이 가능한 평가위원회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 그동안 축적해 온 수많은 기술 자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 수요에 맞는 신규 사업 기획과 중장기 투자 방향 설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분석된 결과물은 다시 연구자에게 투명하게 개방, 연구자 스스로 애로 기술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 연구자를 탐색하거나 기술 이전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연구자 간 교류·협력 플랫폼 구축을 통해서 연구자가 R&D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면 항체가 만들어진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 R&D 시스템에도 '디지털 관리'라는 강력한 항체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변화의 종착점은 투명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하는 R&D 정보의 교류와 확산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우리나라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yhchung@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