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5> 검박함에서 찾는 혁신

저가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떨어뜨려야 했다. 프랑스, 일본, 인도에 있는 개발팀에 동일한 개발 과제를 맡긴다. 얼마 후 보고서를 받아 본 경영진은 입이 딱 벌어졌다. 세 곳 모두 과제를 완수하긴 마찬가지였다. 단지 인도개발팀 제안서엔 다른 곳의 5분의 1 비용으로 해결할 방법이 적혀 있었다.

남다른 혁신 비결을 찾을 수 있다면 무얼 마다 하겠는가. 그런 만큼 경영 구루가 시전한 방법도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한때 유행뿐인 것도 있다. 반면에 남들 모르게 기억해 둘 만한 것도 있다.

그런 것 가운데 주가드와 프루걸로 일컬어지는 혁신이 있다. 실상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 같다. 주가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약 요소를 창의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힌두어에서 왔다. 6억명이 은행 계좌가 없고 4억명이 전선이 안 깔린 곳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누군가는 지불 능력도 박한 이런 한계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낼 방법을 찾아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이나 나비 라드주 같은 인도계 경영학자들은 이것을 '주가드 혁신'으로 묘사했다.

프루걸이라는 방식의 태동은 한참 떨어진 유럽에서다. 좀 윤색됐겠지만 르노엔 이런 전설이 있다. 루이 슈베제르 당시 최고경영자(CEO)가 1990년 말 러시아를 방문한다. 쇼룸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는 르노 신차들을 본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슈베제르는 세련되지만 무엇보다 저렴해야 한다는 조건을 개발팀에 보낸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5> 검박함에서 찾는 혁신

결과물은 6000유로짜리 다키아 로간이다. 2004년에 처음 출시된 후 이것만큼 다양한 외형·기능·브랜드로 만들어진 차도 흔하지 않다. 저렴해야 하니 부품 수는 줄였고, 조립은 인건비가 저렴한 루마니아에서 했다. 곧 베스트셀러가 됐고, 2년 후 사양을 높여 르노 브랜드로도 생산했다. 2017년에 누적 500만대를 넘겼고, 이것을 기반으로 만든 다키아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더스터와 소형 해치백 산데로는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로 남아 있다.

언뜻 태생이 다른 이 두 가지는 닮은꼴이다. 인도는 주가드가 운명처럼 주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반면에 프루걸은 주가드를 기꺼이 찾아 나선 어느 기업 이야기다.

주가드와 프루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더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이런 개발 방식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객에게 과도하게 엔지니어링된 값비싼 제품을 버텨 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10여년 전으로 기억한다. 은퇴한 어느 대선배 얘기였다. 어느 날 부인이 별 이유 없이 택시를 탔는데 그것으로 잔소리를 해서 말다툼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이 넉넉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 얼마 후엔 일본에 컵밥이란 게 있더라는 얘기를 들은 듯하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게 나올 거라고 했다.

이런 주가드와 프루걸 방식을 앞에 두고 기업들은 대부분 주저한다. 성능은 지금처럼, 비용은 더 낮춰야 한다는 데 기업들은 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실상 주가드와 프루걸이 말하는 해결책은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혁신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더 나은, 가치 있는 혁신을 찾아낼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우리 기업이 이제 눈을 돌려야 할 것에 이런 '검박형 혁신'들이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05> 검박함에서 찾는 혁신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