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이후 급속히 추진된 국내 첫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 준비 작업이 순조롭다. 국내 대기업과 협력을 통해 구하기 힘들었던 불화아르곤(ArF) 이머전 노광기를 조만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테스트베드는 노광기, 트랙장비 등 10개 장비를 올해 말까지 구축한 후 내년 상반기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나노종합기술원은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ArF 이머전 노광기를 팹으로 들이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노종기원은 지난해 노광장비 업체 ASML과 수의계약을 맺고, ArF 포토레지스트 연구용 중고 노광장비 구입을 타진해왔다.
ASML의 ArF 이머전 노광장비는 새 장비가 1000억원 대일 만큼 비싸다. 반도체 회로 제조에서 가장 핵심인 장비인데다, 현재 칩 제조 전반에 활용되는 장비라 상대적으로 값싼 중고 장비를 구하기도 어렵다.
나노종기원은 지난해부터 세계 각지 반도체 제조사를 수소문하던 중 국내 기업에서 이 장비를 확보했다. 팹에서 한창 가동 중인 노광기로 파악된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성능이 검증된 범용 ArF 이머전 노광기 구입을 위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며 “노광기 구입이 완료되면 ASML의 재정비 작업을 거쳐 테스트베드로 들여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광기와 함께 포토레지스트를 웨이퍼 위에 균일한 두께로 도포하는 트랙장비도 수의계약으로 들일 예정이다.
나노종기원은 올해 말까지 모두 10개 장비를 팹 안에 들인다. 화학기상증착(CVD), 건식 식각장치, 세정, 열처리, 두께 측정 장비 등이 포함된다. 관련 장비는 이달 중 공개 입찰로 구입할 예정이다. 구매 예산은 385억원이다.
12인치 웨이퍼 테스트베드 설치는 지난해 7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이후 크게 주목받았다. 국내에 10여개 반도체 테스트베드가 있지만, 업계 실정에 맞지 않는 8인치 웨이퍼 위주여서 중소 반도체 업체들의 활용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수출규제로 열악한 반도체 소재 생태계가 드러나면서, 공공부문에서 적극 투자한 소재 실험실을 갖춰 중소 업체들이 '기본 실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전 나노종합기술원은 빠른 후속 조치를 통해 900㎡(300평) 규모로 문을 열고, 내년 상반기 서비스를 시작하는 목표다.
국내에 처음 12인치 반도체 테스트베드가 열리는 만큼 중소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기대치는 상당히 높다. 소재 업체들은 팹 내에서 포토레지스트 등 핵심 소재 개발을, 장비 업체들은 40㎚ 이하 패턴 웨이퍼 서비스를 받으며 장비 성능 실험을 할 수 있다. 포토레지스트 사업에 뛰어든 SK머티리얼즈도 테스트베드 구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테스트베드 구축 이후에도 필수 장비를 보강할 수 있는 꾸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 리스트 안에 필수 계측 장비인 이물질(파티클) 검사 장비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며 “예산에 한계가 있다면 리스(lease) 개념을 도입해 필수 장비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