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재난기본소득과 '고슴도치의 고민'

근심 많은 고슴도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슴도치의 소원'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작품은 철학을 주제로 하여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 성인에게서도 사랑받고 있는 네덜란드 국민작가 톤 텔레헌이 쓴 어른을 위한 동화다.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유의 따스함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소외감, 관계에 대한 갈망을 우화 형식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고슴도치는 걱정이 참 많은 캐릭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외로운 고슴도치는 어느 날 문득 동물들을 초대하기로 결심한다. 한 번도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없고 누군가 찾아온 적도 없는 고슴도치는 초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슴도치는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쓰다만 편지는 서랍장 안에 넣어 둔다. 이후 각각의 동물을 생각하며 온갖 상상을 시작한다.

'다 함께 몰려들어 춤을 추면 어떡하지. 내 가시만 보고 무서워하면 어쩌지. 각자 입맛에 맞는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 텐데. 나와 함께하는 게 즐겁지 않으면 어쩌지. 나를 놀리고 비난하면 어쩌나. 그럴 바엔 차라리 혼자인 게 낫지 않을까?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외로워지면? 고독이란 대체 뭐지, 고독이란 게 날 원하는 걸까? 나는 외로운 걸까, 외롭지 않은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결국 초대장을 부치지는 못했지만 거북이와 다람쥐가 찾아오고, 그 이후에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후의 이야기나 원래 작품 주제는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부분과 다소 거리가 있다. 단지 여러 동물을 초대했을 때를 상상하며 걱정만 앞세우던 고슴도치가 코로나19 대책으로 논쟁만 하는 우리 정치권과 너무 닮았다는 점 때문에 거론했다.

현재 코로나19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질병 자체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질병 자체의 위협보다 더 커지고 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여러 직종과 취약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는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요즘 재난기본소득을 놓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야 모두 지원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대상을 선별하는 노력보다 즉시성을 고려해야 한다거나 피해를 본 계층과 산업·지역 중심으로 집중 지원하자는 의견, 현금보다는 세제 혜택 효과가 더 크다는 등 의견이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특히 '기본소득' 개념을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개념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 기본소득을 받아들이는 기본적 견해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각자 이해득실까지 더해지니 상황은 더 꼬여만 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논의의 핵심은 현 시점에서 피해를 본 계층과 산업·지역을 지원해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해 주고 식어 가는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대책이냐의 세부 조정보다는 집행 시기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좌고우면보다 과감한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사안의 촉박함을 볼 때 끊임없는 걱정만 늘어 가던 고슴도치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될 상황이다. 시기를 놓친다면 아무리 절묘한 대책이라 해도 부치지 못한 고슴도치의 편지가 될 수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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