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등교 시간이 되면 모든 학생이 책상 앞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학생은 궁금한 점은 언제든지 질문하고, 모둠으로 프로젝트도 수행한다. 학기 초여서 낯선 신입생은 게임으로 서로 이름을 익히고, 빙고 게임도 하면서 친해진다.
#학생끼리 스스로 수업 규칙도 만들었다. '자리를 비울 때는 먼저 양해를 구한다' '의견이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을 충분히 들은 후 손을 들고 이야기한다'는 규칙 모두 학생들이 직접 정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학교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활기 넘친 교실 모습.
'4월 개학' 결정으로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굳게 교문을 걸어 잠근 사이 '거꾸로캠퍼스'는 영상회의 솔루션을 이용해 일찌감치 정규수업을 시작했다. 거꾸로캠퍼스는 교사들의 철저한 준비와 일주일 동안의 학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하던 수업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 왔다. 기대를 뛰어넘는 참여 학생들의 열의에 교사도 감동했을 정도다.
초·중·고 개학이 4월로 미뤄진 혼란 속에서 성공리에 온라인 수업을 이끌어가는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거꾸로캠퍼스는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2017년에 설립한 실험학교다. 김범수(카카오),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이재웅(다음), 이해진(네이버) 등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이 투자한 'C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운영하며, 협업과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이 거꾸로캠퍼스의 기본 방향이다. 예정대로라면 지난달 24일 개학하고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팀 단위 프로젝트 수업을 했겠지만 이 학교 역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학사 일정을 늦췄다.
거꾸로캠퍼스 교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이달 초 토론 끝에 온라인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수업이라도 흔히 말하는 '인강'(인터넷강의) 같은 일방 수업은 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확고했다. 기존 오프라인 수업에서 지키려 한 가치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았다. 다양한 영상회의 솔루션과 툴을 검토한 끝에 '마인드 마이스터'를 선택하고 이달 9일 일반 학교에 앞서 개학했다.
신입생 42명을 포함한 전교생 92명은 이날 일제히 '온라인' 등교를 했다. 협업 수업 경험이 부족한 학생이 절반을 넘지만 충분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어떻게 마인드맵을 사용해서 생각을 공유하고 머리를 맞댈 수 있는지, 문서 공유 등 협업 툴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온라인으로 강의했다.
학생들은 스스로 온라인 수업 규칙을 정했다. 음은 소거하더라도 얼굴은 그대로 비춰 주기, 자리 비울 때는 이야기하고 떠나기, 다른 사람 말을 충분히 듣고 '손들기 기능'을 통해 의견 이야기하기 등이다. 오프라인과 다를 것이 없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12~13일 거꾸로캠퍼스만의 '주제 콘테스트'를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주제 콘테스트는 한 학기 동안의 교육 주제를 정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로 수업할지 팀별로 아이디어를 내고 각각 발표한 후 학생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이미 캡스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16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참여,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거꾸로캠퍼스 학생은 온라인상에서 매일 오전 9시에 등교해 오후 5시 하교한다. 모두 정시에 등교해서 소통한다. 일반 학교 학생은 길어진 휴업에 할 일이 사라져 생활 습관이 흐트러진 사례가 많지만 영상 협업 툴을 통한 거꾸로캠퍼스 수업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온라인 수업에 학생이 제대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정반대였다. 학생들이 보인 집중력과 참여도에 교사와 학부모까지 놀라워했다. 학부모들은 연일 고맙다는 문자를 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거꾸로캠퍼스 측은 다른 일반 학교도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를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오프라인에서 학생의 창의력과 협업 능력을 기르는 노력이 있다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역량을 함께 기르는 것은 기본이다.
이성원 거꾸로캠퍼스 교장은 “거꾸로캠퍼스에서는 교사 한 명이 학생 15명 정도를 책임진다. 일반 학교에서도 한 학급에 30명 남짓인데 부담임 교사를 고려하면 비슷한 여건”이라면서 “교육의 가치를 그대로 지키고자 하면서 방법을 찾는다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