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비용궤적. 개념은 간단하다. 혁신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일본 기업의 생산성에 놀란 한 학자가 이 궤적을 추정해 본다. 일본 기업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더 큰 혁신 비용을 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은 훨씬 낮은 궤적 상에 있었다. 마치 더 작은 동심원을 도는 위성처럼 더 짧은 시간에 더 적은 비용으로 혁신을 일궈 내고 있었다.
요즘 많은 기업이 애자일에서 해법을 찾으려 한다. 꽤 그럴듯한 선택이다. 2018년 CA 테크놀로지스 글로벌 조사는 기업 80%가 어떤 형태로든 애자일을 접목하고 있다고 답했다.
위기 앞에 선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애자일의 매력은 대단했다. 분명 애자일은 우리 기업에도 유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첫째 많은 CEO가 애자일을 잘못 적용한다는 점이다. 애자일 선언문을 만든 제프 서덜랜드가 목격한 놀라운 사실은 많은 CEO가 정작 애자일 원칙과 반대로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벌이고, 인재는 흩어 놓았으며, 회의는 늘어났고, 애자일팀 결정은 뒤집히기 일쑤였다.
둘째 많은 CEO가 정작 애자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CEO와의 인터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스프린트나 타임박스 같은 전문 용어는 구사하면서도 애자일이 뭐냐는 질문에는 미소를 짓거나 “웬만큼 안다”로 답하기 일쑤였다. 자칫 그들은 자신의 선의와 달리 애자일의 원칙에 역행하고 프로젝트를 망칠 수도 있다.
셋째 애자일을 큰 수고 없이 지금 당장 성과가 날 것이란 생각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ING를 한번 보라. '뱅킹온더고' 프로젝트에 애자일 방식을 수용하려고 조직을 트라이브-스쿼드-챕터로 바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이 제대로 된 애자일을 실천했다면 거기서 당장 얻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진정 애자일 성과는 애자일 역량 그 자체에 있다.
넷째 누군가의 성공 방식을 따라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ING 사례는 꽤나 유명했다. 우리 금융 기업 가운데 '트라이브-스쿼드-챕터'를 적용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느 포럼의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눈 그 최고경영진은 정작 이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경영진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웬만큼 안다”는 답은 위험하다. 애자일은 일회용 혁신 방식이 아니다.
다섯째 애자일은 수행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인터넷을 한번 보라. 애자일 툴킷이란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한번 살펴보라. 이것으로 애자일이 가능하다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가 만들어 준 실행 계획을 따라하지 말고 원리에서 자신의 실행 계획을 짜라. 정작 자신의 원칙을 고민하려는 생각이 없다면 애자일 혁신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얼마 전 한 기업에서 사내방송을 찍자고 했다. 경험상 마지막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이기 마련이다. 몇 시간 전 종이를 꺼내 한 가지씩 적어 보기 시작했다. 녹화 전에 쪽지에는 열 가지가 적혀 있었다. 이만큼 애자일엔 따져볼 게 많다.
올해 많은 기업이 이 애자일 혁신을 주창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같은 위기 앞에서 CEO도 뭔가를 보여야 한다. 이 완벽한 태풍 앞에서 애자일은 더 없이 큰 매력덩이다.
그러나 애자일을 통해 기업이 얻을 것은 당신에게 이 애자일이란 방법을 생각나게 한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대신 다음 애자일이 필요할 때 꺼내들 당신만의 애자일이 있다는 데 있다. 손쉬운 선택이라는 함정을 피하라. 그럼 애자일은 분명 보답할 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