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현금 자산(2조원) 대비 절반 남짓을 지급보증 이자로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익이 급감한 상황에서 자금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 등이 이자율을 조정하거나 만기 기한을 연장해 주는 식으로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의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각각 1870억원, 9070억원, 211억원, 9282억원 등 총 2조43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금융 비용은 각각 2524억원, 1043억원, 1812억원, 3834억원으로 총 9213억원에 이르렀다. 연간으로 확대하면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은 전액 이자다. 현금 자산 대비 50% 이상이 이자 부채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자 비용 가운데 상당 비중은 '지급보증' 이자다. 정유사들은 한 번에 대량의 원유를 수입하기 때문에 산유국 또는 시중은행에 수입 대금을 외상으로 잡고 원금과 이자를 추후에 갚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수입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시퍼스 유전스'와 '뱅커스 유전스'로 표현한다. 정유업계 4위인 에쓰오일은 지난해 3분기에만 2조6188억원을 유전스 차입금으로 썼다. 이 이자 만기는 통상 90일이나 180일이다.
최근 정유업계는 막대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손에 쥐는 현금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3월 셋째 주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마이너스 1.9달러까지 떨어졌다.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19 영향권에 들면서 물동량 감소 등 정유 수요마저 급감했다.
재고 손실도 확대됐다. 통상 원유는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2~3주 소요되는데 이 기간에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도입 가격 대비 판매 가격이 낮아졌다. 정유사로는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는 원유 재고에도 마찬가지 적용된다. 에쓰오일 등 일부 정유사가 창사 이래 처음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배경이다.
정유업계에서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유전스 이자율을 낮추거나 이자 지급일을 연장하는 식으로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석유 수입 부과금과 원유 관세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이자까지 몰려들어 자금 압박이 너무 큰 상황”이라면서 “지난해와 올해가 최근 몇 년 실적 가운데 가장 안 좋은 만큼 정부가 유동성을 완화해 주는 조치를 내려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정유사들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정유업계와 지속해서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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