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암호화폐 업계는 금융당국 규제권에 편입된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로 통일된다.
과정은 지난했다. 코로나19 이슈와 맞물리면서 법안이 자칫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뻔 했다. 암호화폐 업계가 규제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지속 요청했던 법안이다. 20대 국회 막판까지 통과 여부는 불확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법 통과 여부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규제를 바라보는 산업계 시각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업계는 정부 규제를 자처했다.
업계가 제도권 편입을 갈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정부의 불확실한 규제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 그간 정부발 규제 리스크 불확실성은 시장 성장 저해 요인으로 꼽혔다. 제도권 내에서는 규제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두 번째는 암호화폐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특금법 개정안의 구체적 방안은 금융위원회 시행령에서 공개된다. 금융위 해석이 나오기 전이지만 큰 틀에서는 예측할 수 있다. 암호화폐 사업자가 금융당국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선 크게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자금세탁방지(AML)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충족하는 게 골자다. 실명계좌 확보, 사업자 대주주 적격성 충족도 과제다.
◇정보보안을 검증하는 ISMS 인증
거래소가 충족해야 할 첫 조건은 ISMS 인증으로 보안 기준이 된다. ISMS는 기업 주요 정보자산을 보호하는 관리체계가 적합한지를 심사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보안사고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피해를 예방,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다. 물리, 관리, 기술 등 총체 평가가 진행된다.
인증을 위해선 정보보호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솔루션도 완비해야 한다. 서류 심사 후 전문 인력의 현장실사가 이어진다. 최초 심사로 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매년 사후 심사가 이뤄진다. 정보보호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지를 검증한다. 3년에 한 번씩 갱신검사도 실시된다. 심사 원점에서 전수 검사를 진행할 정도로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ISMS 인증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인증 자체보다 더 어려운 건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것이다. 큰 비용이 추가 발생한다.
금융권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아무리 꼼꼼히 준비해도 검증 과정에서 지적사항이 생긴다. 까다로운 절차인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고위 관계자는 “ISMS 인증에만 준비기간 1년, 비용은 1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주기적으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업체가 국내에 몇 안 된다. 제도 시행 후 시장 구도가 요동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세탁 범죄 막아라…금융사 수준 규정 적용될 듯
특금법 개정안 핵심 중 하나는 AML 의무다. 금융권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업계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AML에는 자금세탁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전반적 조치를 포함한다. 암호화폐 거래 전반이 현금 거래와 마찬가지로 투명해지는 것이다.
AML 역시 전담 조직 신설은 필수다. 암호화폐는 익명성 때문에 각종 범죄에 악용된 전력이 있다. 자금세탁 방지 노력으로 범죄 연루 오명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다.
자금세탁 방지엔 복합 대책이 필요하다. △사업자의 거래자 '신원확인(KYC)' △개인 간 거래 데이터를 수집하는 '트래블 룰' △의심거래 발견 시 금융정보분석원(FIU) 신고 의무가 부과된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프로세스 역시 주요 요소다.
AML은 암호화폐 특징인 익명성과는 정면 충돌하는 조치다. 업계에서는 일부 규정에 현실 대안이 필요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현행 기준을 그대로 따를 수 있을지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시행령이 나오기 전 단계인 만큼, 시행령 향방을 명확히 알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업계도 예상되는 규제 시나리오를 토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트래블 룰 등 다소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시행령이 어떤 방향으로 도출될지 파악 중”이라고 답했다.
◇新 특금법 시대 도래…업계, 지각 변동 가시화
AML, ISMS 인증보다는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 심사가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대주주 신용, 도덕성, 중대범죄행위 유무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한다. 거래소가 금융사와 같은 지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임원은 “AML, ISMS 인증은 물적·인적 투자를 통해 어떻게든 충족시킬 수 있다. 두 규정은 불확실성이 덜한 부분”이라며 “진짜 고민은 대주주 적격 평가다. 국내 주요 거래소 다수가 각종 송사에 휘말렸다. 엄격하게 평가가 이뤄진다면 심사를 통과할 업체가 몇 안 된다”고 우려했다.
암호화폐 시장 지각변동이 초읽기에 접어들었다. 국내 사업자에겐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왔다. 거래소엔 극소수 사업자만 시장에 남을 것이 유력하다. 복수 업계 고위 관계자는 90~95% 사업자가 금융당국 라이선스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호화폐 인식 대전환은 생존 업체들 몫으로 남게 됐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