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 실감콘텐츠 산업 육성 원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용 증강현실(VR), 가상현실(AR) 서비스가 출현한 것은 3~4년 전이다. 그러나 개인용(B2C)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고 기업용(B2B) 서비스에 실감기술 접목이 본격화되는 것은 올해부터다.
시기적으로는 초고속·초저지연이 핵심인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가 1년을 맞았다. 3월 기준 5G 가입자 500만명 돌파가 확실시되며 실감콘텐츠 시장 성장 기대감도 무르익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원격진료를 비롯한 언택트 서비스 요구가 커지는 것도 실감콘텐츠 수요를 부채질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는 실감콘텐츠 예산을 늘리고 관련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실감콘텐츠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는 기업 관심도 고조된다.
◇3년 후 세계 실감콘텐츠 시장 411조원
실감콘텐츠는 VR, AR, 홀로그램 등 실감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콘텐츠다. 정부는 인간 오감 자각을 통해 정보를 제공, 유사한 체험(현실감)을 가능하게 하는 콘텐츠를 실감콘텐츠라고 설명한다.
실감콘텐츠는 몰입감, 상호작용, 지능화 등 3I(Immersive, Interactive, Intelligent) 특징을 통해 높은 현실감을 제공하고, 경험 영역을 확장한다. 디지털 콘텐츠에 실감기술을 적용하면 콘텐츠 전달 효과와 부가가치가 배가된다.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이 아니다. 국방, 재난, 안전,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와 제조, 농업, 도시, 미디어 등 산업, 과학기술 등 전 분야에 활용, 경제성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감기술 개발사 관계자는 “AR를 의료·과학 분야에 적용할 경우 현미경에 기존에 어려웠던 정보를 표현하는 등 연구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서 “언택트가 화두인데 실감기술이 원격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효율성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기술전략위원회인 이노베이트UK는 '실감기술은 정보통신기술(ICT)과 같은 범용기술로 경제전반 혁신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네덜란드 시장조사업체 에코리스는 2020년 유럽 VR·AR 분야 경제효과로 생산유발 540억유로(약 73조원),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예상했다.
지난해 10월 정부 정보통신전략위원회가 의결한 '실감콘텐츠 활성화 전략(2019~2023)'에 따르면, 세계 실감콘텐츠 시장은 2017년부터 연평균 52.6% 성장해 2023년 3641억달러(약 411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VR, AR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94.1%로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시장 역시 2017년부터 연평균 51% 증가, 2019년 2조8112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한 구심점 필요
실감콘텐츠에 대한 기대감 고조에 따라 산업 육성을 위한 각국 움직임도 분주하다.
일본 총무성은 재작년 초 차세대 영상기술을 위한 실증사업에 착수했다. 중국 공산부는 2018년 말 '가상현실산업발전 가속화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 2025년까지 중국 VR 산업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는 방침을 내놨다.
미국은 국가 차원 실감콘텐츠 연구개발(R&D)를 추진한다. 핵심기술 확보 후 교육과 국방, 의료 등 공공분야 활용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다.
유럽 역시 2015부터 대형 R&D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차세대 실감콘텐츠 기술 확보를 위해 13개 이상 대형 프로젝트에 1조6000억원을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20016년을 전후로 실감콘텐츠 서비스가 등장했다. 정부는 5G 상용화를 준비하면서 5G 확산 킬러 서비스로 실감콘텐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실감콘텐츠 산업은 콘텐츠 양적·질적 부족, 전문기업 부족 등으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냉정한 판단이다.
5G 상용화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즐길 만한 콘텐츠는 부족하다. 입체 콘텐츠, 홀로그램 등 고품질 실감콘텐츠 개발 지원을 위한 장비·시설과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기술 관점에서 디바이스 일부 분야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지만, 실감콘텐츠 기술은 선진국 대비 뒤처진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2018 ICT 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미국과 실감콘텐츠 기술 격차는 2017년 기준 1.4년이다.
투자 지원 측면에서는 이통 3사 투자 규모가 모두 100억원(지난해) 이내이며 중소기업은 선도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단순 콘텐츠 개발 지원이 아닌 제조, 국방, 의료 등 타 산업과 융합을 위한 차세대 콘텐츠 발전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투자 집행과 차세대 콘텐츠 개발 지원, 이를 통해 산업 육성을 이끌 구심점이 필요하다. 실감콘텐츠 정책협의회가 출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협의회, 다부처 과제발굴·제도개선 추진
실감콘텐츠 정책협의회는 '실감콘텐츠 활성화 전략(2019~2023)'을 이끌 추진체다. 통신사와 전문업체 등 민간기업 전문가, 주요 부처 담당 공무원이 참여한다.
협의회는 실감콘텐츠 분야 다부처 추진과제를 발굴하고 규제개선 등 민간 요구과제를 검토한다. 신수요 창출, 핵심 콘텐츠 검증, 기술·인프라 고도화, 산업성장 지원 등 다양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각각 정책을 추진하던 부처와 민간기업이 머리를 맞댄다는 점에서 산업 활성화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실감콘텐츠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면서 “그러나 어느 한 부처나 기업만으로는 시너지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민관이 참여하는 실감콘텐츠 정책협의회가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계획 수립과 추진 못지않게 과거 추진 사업을 되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2018년 전후로 체험과 콘텐츠 제작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투자가 지속됐지만 당시 투자가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확인된 게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작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시설이 실외형 테마파크로 전락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하고 “과거 VR, AR 예산 투자가 소기 목적을 달성했는지 점검해보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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